"동양적 전제주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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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제형태]]』에서 소위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제창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동양에서는 [[농업]]과 [[수공업]]이 결합되어 자급자족적인 노동주체가 비자립적 [[공동체]]에 매몰되어 있으며, 그 공동체의 총괄적 통일체인 세습전제군주만이 생산수단인 토지를 독점소유하는 유일 소유자인 사회구조로 동양적 전제주의를 정의했다. 이 사회구조에서 잉여노동은 [[공납]]의 형식을 취하고, 전제군주를 찬미하기 위한 공동노역으로 인민은 착취당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동양의 노동주체들과 전제군주의 관계를 "총체적 노예제"라고 불렀다.
 
== 비판 ==
'동양적 전제주의' 개념은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개념은 학계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대규모 관개사업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도 전제적 노예제가 등장하며, 또한, 대규모 관개사업이 활발한 곳에서 봉건제가 형성되기도 한다. 즉, 예외 상황이 너무 많다.
# 카를 비트포겐은 전근대 동양 사회에서 토지는 국가의 소유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지역 귀족 및 지방 세력의 통제에 있다고 하였다. 그는 동양 사회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인민 다수는 귀족 세력에게 노동력 제공 및 공납을 행하는 형태로 종속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송나라(宋朝)부터 귀족이 유명무실한 작위가 되었고, 중앙관료는 지역성을 대표하는 관료 또는 귀족이 아닌, 왕권에 완전히 소속된 관료에 해당하였다. 심지어 중국 왕권은 이들 출신지에 부임시키지 않았다. 또한, 조선의 경우는 중반기 이후부터 녹봉제가 성립되었기에 역시 수취권이 지방 귀족에게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양적 전제주의'에 대한 예외 상황이 존재한다.
 
== 참고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