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레닌주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대한 입장 =====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llang|de|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 등과 같은 아시아 국가는 서양의 봉건제와 차별화 된 정체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역사철학』과 유물사관의 입장에 따라 당시 아시아 사회를 노예제와 봉건제의 성격이 혼재된 정체적(停滯的) 사회라고 진단하였다. 그는 이에 기반하여 아시아적 생산양식은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봉건제의 상태와 다른 것이며, 모든 경제 요소에 대한 소유 권리를 하나의 전제군주에게 전유한 전제주의 체제의 일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은 1931년 레닌그라드 회의에서 아시아의 생산양식을 봉건제와 다른, 특수한 무언가라고 보지 않았으며, 카를 마르크스가 동시대에 판별했던 아시아 사회에 대해 '봉건사회'라고 규정하였다. 즉, 스탈린은 당시 아시아에 대해서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도식에 맞춰서 해석하기를 거부하였으며, 동양의 전근대사회의 성격을 서양 봉건사회와 비슷한 단계의 사회로 간주했던 것이다. 이는 산업화 시대에 등장한 반식민지(反植民地) 대열에 선 공산주의자들이 자국을 봉건사회라고 판단한 핵심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들어서 아시아의 생산양식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해석과 이오시프 스탈린의 기계론적 해석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령, 전자의 해석을 따를 경우, 동양의 사회구성체는 서양의 사회구성체에 비해 뒤떨어진 것이 되며, 동양 사회를 자체적인 발전성이 없는 정체된 사회로 봤다는 점에서 이 사관은 제국주의 침탈에 이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후자의 해석을 따를 경우, 동북아 지역의 사회도 봉건사회로 해석할 수 있는데, 당시 동북아 사회는 봉건제의 성격보다는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성격을 더 강하게 갖췄기 때문에 역시 논쟁의 여지가 크다. 두 문제와 관련된 논쟁은 역사를 보는 관점 중 하나인 역사주의(historicism) 도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및 비판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인민민주주의 =====
[[파일:Bundesarchiv Bild 183-19400-0029, Berlin, Marx-Engels-Platz, Demonstration.jpg|섬네일|400px|1953년 독일민주공화국에서 행진하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초상화 행렬. 독일민주공화국은 자본주의로 흡수 통일이 되기까지 자국의 사회발전단계를 인민민주주의로 규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