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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만력28년), [[지식인]]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마테오 리치]]를 처음 만났고, [[1603년]](만력31년), 그에게 [[세례]]를 받아 [[카톨릭|로마 가톨릭교회]]으로 개종해 [[천문학]]과 [[수학]]을 배웠다. 그는 [[한림원]](翰林院) 서길사(庶吉士)로 있으면서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포교서와 유럽의 역서 등을 번역하고, 양학을 철저히 연구하여,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마테오 리치]]와 함께 번역하여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기하원본]](幾何原本)》 (전6권)을 간행하였다.
 
예수회 선교사 판토하(Diego de Pantoja, 龐迪我)를 도와 로마 가톨릭 교의 해설서 《칠극진훈(七克眞訓)》을 저술하였으며, 또 서양의 천문학 책을 번역하여 《숭정 역서(崇禎曆書)》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 여파로 《농정 전서(農政全書)》(전 60권)를 만들어 중국에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농학자의 주장을 모두 분류하는 등 중국 문화에 획기적인 공헌을 하였다. [[1623년]](천계3년) 예부우시랑(禮部右侍郎)이 되었으나 책모에 의해 물러났다. [[1627년]](천계7년), 다시 기용되어 예부좌시랑(禮部左侍郎)·, [[1630년]](천계10년), 예부상서(禮部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큰 벼슬에 있으면서 천주교 포교에 도움을 주었고, 서양의 과학과 문명을 소개하였으며, 서방의 인사들을 청해하기도 했다. 한림원(翰林院) 서길사(庶吉士)로 있을 때 선교사들과 함께 [[상하이]]에 [[교회]]·[[병원]]·고아원·[[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 조선에 끼친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