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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감호론 ==
[[1619년]](만력47년), 명-조선 연합군이 심하(深河) 부차(富車)에서 후금(後金) 군대와의 전투(이른바 심하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한림원검토(翰林院檢討)로 있었던 서광계는 그해 3월부터 11월까지 7개의 상주문을 통하여 요동(遼東) 방어책을 건의하였는데, 이중 6월 28일자로 제출한 상주문 <遼左阽危已甚疏>에서 조선을 감호(監護)하자는 이른바 ‘조선감호론(朝鮮監護論)’을 제기하였다.
 
서광계는 ‘조선마저 후금의 위협에 굴복하여 조선이 이미 후금 수중에 들어갔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조선을 감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광계는 감호에 대하여 ’감(監)은 그 정형을 살피는 것이고 호(護)는 그 위태로움을 돕는 것이다(監者察其情形, 護者扶其顛危也)’라고 설명하였다. 즉 조선을 감호한다는 것은 주변 정형(情形, 주변 정세 형국)을 살펴보았다가 위기 발생 시에 원조하겠다는 뜻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진주사(陳奏使)로 파견되어 북경에 다녀온 이정구(李廷龜)는 서광계의 감호론을 확대해석하였다. 이정구는 현재 명 조정에서 조선감호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특히 이정구는 서광계의 감호에 대한 설명에 대하여, ‘감(監)은 그 정형(政刑, 정치와 형벌, 조선의 정치 전반)을 감독하는 것이고 호(護)는 그 위태로움을 돕는 것이다(監者監其政刑, 護者扶其顛危云)’라도 왜곡 보고하였다.
 
== 외부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