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성 (야구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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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성'''(崔大成<ref>{{서적 인용 |저자=[[KBO 리그|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482 |날짜=2009-03-10}}</ref>, [[1985년]] [[5월 17일]] ~ )은 전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 [[kt 위즈]], [[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다.
 
==아마추어선수 시절==
==[[kt 위즈]]=아마추어 시절===
[[부산중학교]] 시절 팀 내 에이스였으나, [[2001년]] [[부산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조성옥 (1961년)|조성옥]] 감독에 의해 포수로 포지션이 변경좪다. 선배 [[전병두]], 동기 [[장원준 (야구 선수)|장원준]]-[[박근홍 (야구 선수)|박정태]], 후배 [[이왕기]] 등 투수 자원으로자원이 넘쳐나는 부산고 마운드에넘쳐나 설 자리가 없었고, 3학년 때인 [[2003년]]에 들어서야 투수로 등판해 54⅓이닝을 소화했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순위(전체 9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고, 데뷔 초기부터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하다 [[2007년]]에 3승 2패, 7세이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 해 [[5월 10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158km/h의 패스트볼로 [[KBO 리그]] 최고 구속 타이 기록을 작성하며 '국내 최고 파이어볼러'로서 위력을 과시했지만<ref>{{뉴스 인용|저자=권인하|제목=158km 한국 최고 구속 타이 최대성은 누구?|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11/2007051100409.html|뉴스=스포츠조선|날짜=2007-05-11|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당시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었던 [[김인식 (1947년)|김인식]]이 "가만히 있으면 다 볼"이라고 말할 정도로 불안한 제구력은 여전히 약점이었다.<ref>{{뉴스 인용|저자=이상학|제목='광속구' 최대성, 자신감과 꾸준함이 '절대 과제'|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03/2008020300344.html|뉴스=조선일보|통신사=OSEN|날짜=2008-02-03|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2008년]] [[7월 15일]]에 토미 존 수술을 받고<ref>{{뉴스 인용|저자=김관|제목=‘158㎞ 사나이’ 최대성 수술후 첫 피칭 |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art_id=200905282244576&sec_id=510201|뉴스=스포츠경향|날짜=2009-05-28|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1군에 오르지 못한 채 [[2009년]] 시즌 후 입대해 [[부산고등법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한 후 소집 해제됐다.<ref>[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44&aid=0000186325 김은진의 가을에세이③‘과거는 과거일뿐’ 최대성, 내가 달라진 이유] - 스포츠경향</ref>
 
[[2012년]] 복귀 첫 시즌을 맞이하여 [[8월 8일]] [[LG 트윈스|LG]]전에서 2,310일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고,<ref>{{뉴스 인용|저자=김세호|제목=롯데 최대성, 2,310일만에 시즌 첫 세이브 달성|url=https://sports.v.daum.net/v/20120808222011497|뉴스=다음|통신사=마이데일리|날짜=2012-08-08|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한 달 뒤인 [[9월 7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159km/h의 공을 던져 자신의 최고 구속 기록을 경신했다.<ref>{{뉴스 인용|저자=장강훈|제목=롯데 최대성 시속 159Km 직구 뿌렸다 |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574627|뉴스=매일경제|통신사=스포츠서울|날짜=2012-09-08|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양 떼 야구의 핵'으로서 빠른 볼을 앞세워 팀의 마당쇠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며 71경기에 출전해 67.2이닝동안 8승 8패, 1세이브, 17홀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 데뷔 후 최고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순위(전체 9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고, 데뷔 초기부터 주로 중간계투로중간 계투로 등판하다 [[2007년]]에 3승 2패, 7세이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 해 [[5월 10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158km/h의 패스트볼로 [[KBO 리그]] 최고 구속 타이 기록을 작성하며 '국내 최고 파이어볼러'로서파이어볼러로서 위력을 과시했지만<ref>{{뉴스 인용|저자=권인하|제목=158km 한국 최고 구속 타이 최대성은 누구?|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11/2007051100409.html|뉴스=스포츠조선|날짜=2007-05-11|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당시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었던 [[김인식 (1947년)|김인식]]이 "가만히 있으면 다 볼"이라고 말할 정도로 불안한 제구력은 여전히 약점이었다.<ref>{{뉴스 인용|저자=이상학|제목='광속구' 최대성, 자신감과 꾸준함이 '절대 과제'|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03/2008020300344.html|뉴스=조선일보|통신사=OSEN|날짜=2008-02-03|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2008년]] [[7월 15일]]에 토미 존 수술을 받고<ref>{{뉴스 인용|저자=김관|제목=‘158㎞ 사나이’ 최대성 수술후 첫 피칭 |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art_id=200905282244576&sec_id=510201|뉴스=스포츠경향|날짜=2009-05-28|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1군에 오르지 못한 채 [[2009년]] 시즌 후 입대해입소해 [[부산고등법원]]에서부산고등법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한 후 소집 해제됐다.<ref>[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44&aid=0000186325 김은진의 가을에세이③‘과거는 과거일뿐’ 최대성, 내가 달라진 이유] - 스포츠경향</ref>
[[2012년]] 복귀 첫 시즌을 맞이하여 [[8월 8일]] [[LG 트윈스|LG]]전에서 2,310일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고,<ref>{{뉴스 인용|저자=김세호|제목=롯데 최대성, 2,310일만에 시즌 첫 세이브 달성|url=https://sports.v.daum.net/v/20120808222011497|뉴스=다음|통신사=마이데일리|날짜=2012-08-08|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한 달 뒤인 [[9월 7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159km/h의 공을 던져 자신의 최고 구속 기록을 경신했다.<ref>{{뉴스 인용|저자=장강훈|제목=롯데 최대성 시속 159Km 직구 뿌렸다 |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574627|뉴스=매일경제|통신사=스포츠서울|날짜=2012-09-08|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양 떼양떼 야구의 핵'으로서핵으로써 빠른 볼을 앞세워 팀의 마당쇠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며 71경기에 출전해 67.2이닝동안 8승 8패, 1세이브, 17홀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기록해 데뷔 후 최고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2013년]] 팔꿈치에서 뼛조각이 발견돼 다시 시즌을 마감했다.<ref>{{뉴스 인용|저자=김은경|제목=롯데 최대성 오른쪽 팔꿈치 수술|url=https://www..yna.co.kr/view/AKR20130618194300007?|뉴스=연합뉴스|날짜=2013-06-18|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2014년]]에는 부상에서 복귀했고 41경기에 출전해 2승 2패, 1홀드,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팀 내 4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중 가장 평균자책점이 낮았지만 코칭스태프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1군]]과1군과 [[2군]]을2군을 오가며 시즌을 보냈다.
 
===[[두산kt 베어스위즈]] 시절===
[[2014년]]에는 부상에서 복귀했고 41경기에 출전해 2승 2패, 1홀드,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팀 내 4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중 가장 평균자책점이 낮았지만 코칭스태프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1군]]과 [[2군]]을 오가며 시즌을 보냈다.
[[2015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4:5 트레이드에트레이드를 의해통해 이적하였다.<ref>{{뉴스 인용|저자=이원만|제목=kt-롯데, 박세웅-장성우 포함 4:5 트레이드 단행|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02/2015050201930.html|뉴스=스포츠조선|날짜=2015-05-02|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그러나 고질적인 부상의 여파로 인해 트레이드 첫 해에 다시 수술을 받았고, 3년 동안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 8경기에 출전해 2.2이닝만 소화해 슬럼프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소화했다.
 
==[[kt 위즈]] 시절==
[[2015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4:5 트레이드에 의해 이적하였다.<ref>{{뉴스 인용|저자=이원만|제목=kt-롯데, 박세웅-장성우 포함 4:5 트레이드 단행|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02/2015050201930.html|뉴스=스포츠조선|날짜=2015-05-02|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그러나 고질적인 부상의 여파로 인해 트레이드 첫 해에 다시 수술을 받았고, 3년 동안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 8경기에 출전해 2.2이닝만 소화해 슬럼프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두산 베어스]] 시절==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이적하자마자 곧바로 [[2018년]] 시즌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3월 31일]] [[kt 위즈|kt]]전에서 한 이닝에 만루 홈런 2개를 허용하며 [[KBO 리그]] 사상 첫 ‘한만두(한 경기에서 만루 홈런을 두 번 허용)’로 불렸다. 한 이닝동안 무려 51개의 공을 던지며 7피안타, 2피홈런, 9실점으로 최악의 투구를 했고,<ref>{{뉴스 인용|제목=최대성, 한국프로야구 최초 '한만두' 투수 오명|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31500039&rftime=20150630|뉴스=서울신문|날짜=2018-03-31|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경기 직후 1군엔트리에서 바로 말소돼 2018 시즌의 대부분을 2군에서 보냈다. 9월 중순에 1군으로 승격돼 후반기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했다.
 
===[[두산 베어스]] 시절===
하지만 불안한 제구력을 이겨내지 못한 채 더 이상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고, 2019 시즌 후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되어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ref>[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529&aid=0000039815 ‘지도자 변신’ 최대성 “애증의 선수, 그게 운명인가 싶다.”] - 엠스플뉴스</ref>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이적하자마자 곧바로 [[2018년]] 시즌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3월 31일]] [[kt 위즈|kt]]전에서 한 이닝에 만루 홈런 2개를 허용하며 [[KBO 리그]] 사상 첫 ‘한만두한만두(한 경기에서 만루 홈런을 두 번 허용)’로 불렸다. 한 이닝동안 무려 51개의 공을 던지며 7피안타, 2피홈런, 9실점으로 최악의 투구를 했고,<ref>{{뉴스 인용|제목=최대성, 한국프로야구 최초 '한만두' 투수 오명|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31500039&rftime=20150630|뉴스=서울신문|날짜=2018-03-31|확인날짜=2018-11-25|url-status=live}}</ref> 경기 직후 1군엔트리에서1군 엔트리에서 바로 말소돼 2018 시즌의 대부분을 2군에서 보냈다. 9월 중순에 1군으로 승격돼 후반기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했다.
하지만 불안한 제구력을 이겨내지 못한 채 더 이상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고, 2019 시즌 후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되어방출돼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ref>[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529&aid=0000039815 ‘지도자 변신’ 최대성 “애증의 선수, 그게 운명인가 싶다.”] - 엠스플뉴스</ref>
 
==국가대표 경력==
===2005년 야구 월드컵===
프로 시즌 2년차 때인 [[2005년]] 9월 [[2005년 야구 월드컵|제36회제 36회 야구 월드컵]]을 위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첫 선발돼 기대 이상의 맹활약을 펼쳐 [[최희섭]], [[김병현]], [[홍성흔]] 등이 참가했던 [[1998년]] 대회 이후 7년만에 대한민국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9월 8일]] 브라질과의 A조 3차전에 구원 등판해 152㎞ 강속구를 던지며 3이닝 7탈삼진, 1피안타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한 후, [[9월 11일]] 중국과의 6차전에 선발 등판해 7회까지 퍼펙트 피칭을 하며 7⅓이닝 12탈삼진, 2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9월 15일]] 일본과의 8강전에서도 승리를 이끌며 4강의 주역이 됐다. 150㎞/h가 넘는 강속구를 주무기로 3할대 타자만 10여명이 포진한 일본의 강타자들을 경기 내내 압도하며 8이닝 10탈삼진, 9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해 경기 MVP와 함께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의 일등 공신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