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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몸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는 예술의 한 종류이다. 사회적 상호작용 또는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영혼|영적인]] 의식 또는 공연 등에도 춤이 이용된다. [[예술]]의 관점에서는 미적(美的) 정서를 리듬에 맞춰 신체로 표현하는 공연예술이다. 음악 또는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예술적 행위이다<ref>{{저널 인용|제목=위키백과에서 춤의 2019년 6월 8일 (토) 10:04 판으로 보이는 글|저널=|성=|이름=|url=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B6%A4&oldid=24396647|날짜=2019-06-08|출판사=|언어=ko}}</ref>. 춤에 음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음악이 꼭 있어야 리듬에 맞추거나 리듬을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춤은 또한 사람이나 동물 사이(예: 벌의 춤)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방식을 말하는 데에도 쓰이기도 한다. 춤은 개인적인 언어표현이기도 하다.
 
* '''1. 무용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잘하는 사람. ‘무용가’, ‘무용수’로 순화.'''
위100의 pe23주 종2대가 빤쓰벗고 부랄떨며 추는 춤이 세계에서 가장 저질이며, 총대처럼 이런 춤을 추는놈은 바로 [[제국친위대]]에게 체포되어 삼청233교육회에 끌려갈 것이다!
 
위100의 똥진화가 팬티벗고 엉덩이를 흔들어 똥뿌리며 추는 춤 역시 저질적인 춤이다.
 
* '''1. 무용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잘하는 사람. ‘무용가’, ‘무용수’로 순화.'''
* 손님을 상대로 사교춤을 추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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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의 소재 ==
무용의 소재(素材)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신체 바로 그것이다. 인적 구성(人的構成)은 작품내용을 기본적으로 방향지어주는 것이다. 남성 또는 다수 인원의 구성에는 자체의 역량감(力量感)이 다르며, 여성에게는 유연(柔軟)한 느낌, 혹은 섬세한 느낌이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 또한 어린이들에게는 표현 이전에 본래의 사랑스러움이 넘쳐 흐른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소재가 지니는 성질을 각각의 특성과 동시에 그 한계를 나타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어, 소재를 살려 개성적인 표현성을 발휘시킨다는 점에 무용의 묘미와 기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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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직임의 상징 ===
무용의 특성은 인간의 신체를 소재(素材)로 하고, 그 살아 있는 움직임을 매체(媒體)로 하여 율동적인 조직으로 상징화된 형식을 지닌다는 점에 있다. 무용이 본질적으로 생명의 약동감, 도취촉합감(觸合感)을 가져다주는 것은 이 매체의 특질에 말미암은 바가 크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신체의 움직임은 언어를 대변하고 보완하는 몸짓으로서 또한 감정의 고양(高揚)에 수반되는 신체 표정으로서 이미 일상생활 속에 있으며, 예술 이전에 무언(無言)의 자기 표현적인 임무를 다하고 있다. 또 신체동작의 율동화는 발달 과정면에서 살펴보면 유아(幼兒)의 유희에서도 나타나 있으며, 사적(史的)으로는 예로부터 사람들의 소망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제사(祭事) 등과 결부되어 나타나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친화(親和)와 연대감(連帶感)을 가져다주는 유대(紐帶)의 작용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용은 가장 원초적(原初的)인 인간의 표현수단이며, 인간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모든 예술의 원형을 이룬다고 볼 수 있겠다. 무용은 각 연대와 생활을 반영하며, 다양한 표현으로서 분화·발전하고 있다.
 
무용에 대한 정의(定義)의 변천은 그 일단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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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미(舞踊美) ===
무용 작품의 감상은 임시적인 출현<ref>시시각각으로 사라져가는 움직임의 잔상(殘像)</ref> 이 누적되는 과정 속에서 성립되는 작자(作者)와 감상자의 미적 상호교섭(美的相互交涉)으로서의 특색을 지닌다. 주제에 의하여 강하게 성격지어진 일련의 움직임은, 감상하는 자로 하여금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되며, 그 생성발전 과정 속에서 작품의 경성(傾性)이 점차로 밝혀짐으로써 한 개의 통합된 사상과 감정의 미적(美的) 출현으로서의 그 성격이 형성되고 전달된다. 사라져가는 가상(假象)인 작품의 감상(鑑賞)에는 작품의 표현성 위에서 또한 감상자의 개성이라든가 자세가 작용하며, 보는 측의 가소성(可塑性)의 율도 상당히 커지는 특성이 출현된다. 감상의 메커니즘에 관해서 살펴본다면, 작품은 감정의 질과 감정의 형(型)이 상호 접근함으로써 포착된다. 감정의 질이란, 결국 우리가 기쁨과 괴로움을 직접 느끼게 되는 감정의 성질이며, 감정의 형이란 그 근저에 있어서 지주(支柱)를 이루는 원형적(原型的)인 작용이다. 예컨대 벅찬 환희, 격렬한 고뇌라고 불리듯이 환희와 고뇌는 쾌(快)·불쾌의 양극적 감정이면서도 또한 동일하게 '격렬하다'라고 하는 표현방법의 원형(原型)을 공유(共有)하는 수가 있다. 무용 작품은 이처럼 격렬함, 부드러움, 딱딱함, 유동(流動), 단속(斷續) 등의 원형, 즉 '감정의 형(型)'을 지니는 움직임으로서 내부적으로 생명이 부여되며, 외부적으로는 '감정의 질'을 달리하는 움직임으로서 살붙임된 새로운 출현으로 볼 수 있겠다. 작품은 또한, 개개의 작품의 독자성을 초월해서 민족으로서의 경향과 성격을 지니며, 오늘날의 다채로운 무용문화를 탄생시키고 있다.
 
발레가 지니는 발의 완전한 외전(外轉)이나 그 섬세한 율동은 외연적(外延的)·원심적(遠心的)인 기법(技法)으로서 비상적(飛翔的)·환상적인 미를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무용]]의 우아한 율동미적 유려(流麗)함이라든가 에스파냐 무용의 내연적(內燃的)인 격렬성 등 각각 그 민족적인 특성미가 있는데, 특히 기법의 고정화(固定化)에 저항하여 현대적인 스피드와 다이내믹스를 지니는 불협화(不協和)한 미를 개척하는 [[현대 무용]]이라든가 [[재즈 댄스]]의 신선성(新鮮性)도 경시할 수는 없다.
 
무용작품은 오늘날 구상적(具象的)·비구상적인 작풍과 의미적·감정적인 것에서부터 개념적·기계적인 것에 걸치며, 또한 의도적(意圖的)인 것에서부터 우연적·현상적인 것을 바라보는 접근을 포함하여 내용상·형식상에 있어서 굉장한 폭을 가지고 있다. '생명의 욕구'에 연출되는 미의 표현은, 민족성과 그 전승문화(傳承文化), 생활계층과 세대(世代), 또한 인간 개개의 개성에 따라서 다르며, 또한 유동성을 가지고 생성 발전하며 승화 혹은 소멸(消滅)하는 것이다.
 
무용의 현대적인 의의(意義)는 무엇일까. 급속한 근대화의 기구(機構)를 지닌 현대사회에 있어서, 참으로 생명을 발현(發現)시킬 수 있는 터전은 계속 상실되어 가고 있다. 잃어가는 인간성의 회복,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영혼적인 대화를 생생하게 부활시키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서의 무용은 참으로 귀중한 존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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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의 발생 - 원시무용(原始舞踊) ==
 
예술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것이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소리가 나오려면 육체의 일부가 우선 진동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원초적인 예술수단은 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원시시대(原始時代)에 있어서 인간사회는 치졸(稚拙)한 집단행사를 영위했다. 이른바, 종교행사와 모방 전쟁과 수렵이 그 대표적인 것이며, 개인적 행사로는 성적(性的) 충동의 표현이다. 그리고 원시시대의 무용은 아니지만, 원시적 형태의 무용으로 탈춤(假面舞)을 들 수도 있다. 탈춤은 하나의 무속적(巫俗的) 관념으로서 병을 추방하는 행사 또는 재앙이나 액운(厄運)을 쫓아내는 행사로서 추었다.
{{인용문2|원시의 예술은 다만 숭배를 위해서와 악마를 달래기 위한 기능으로서만 존재한다. 그것은 정서의 극히 좁은 범위를 표현하는 데에 그치고, 더구나 그것은 주로 공포의 정서인 것이다.|[[하버트 리드]]|<예술의 의미>}}
우리는 현존하는 미개민족의 무용이나 고대 조각 등을 통하여 원시무용의 모습을 추측하고, 모든 민족이 예부터 춤을 사랑해 왔음을 알 수가 있다. 원시의 인간은 그들 자신의 정체를, 또한 우주나 자연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뇌명(雷鳴)·폭풍·일식(日蝕)과 같은 갑작스런 사건 속에서 그들을 지배하는 위력 있는 존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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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신을 인간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해, 신과의 대화를 위해, 신을 숭배하기 위해 춤을 추었다.
 
바로 여기에 모든 무용이 지니는 원시적인 모습이 있다. 그들의 춤은 죽음·탄생·사랑·전쟁·평화·질병·건강·수확·천재(天災) 등과 결부되고 있었다. 그들은 춤에 몰입함으로써 새로운 힘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춤은 현재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원시무용은 제의(祭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생활의 실용적 의미를 가지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보겠다. 제의와 무용의 연결은 그 후 시대와 민족에 따라 양식을 달리했으며, 또한 생활에 있어서의 의미와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우리나라의 향토예능처럼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존속하고 있다.
 
이러한 무용의 원시형태는 종교 무용, 모방 무용, 수렵 무용, 전쟁 무용, 노동 무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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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무용 ===
'춤을 춘다'는 것은 보다 대중적인 기술의 즐거움에로 이끌고, '보여 준다'는 것은 보다 고도한 기술수준으로 발전시킨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은 무용을 생활의 직접적 실용(實用)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서, 또 개인의 표현, 개성의 주장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민중적인 민속무용과는 방향을 달리한 예술무용(藝術舞踊)이 나타났다. 예술무용은 20세기로의 전환기에 [[이사도라 덩컨]], [[미하일 포킨]], [[디아길레프]], [[라방]], [[비그만]] 등의 위대한 사람들에 의해서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의 마음과 표현의 중요성을 가르침받고 미(美)와 정신에 각성했다. 오늘날 예술무용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아 [[발레]]와 [[현대 무용]]이다.
 
==== 발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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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 무용 ===
==== 민속 무용 ====
[[파일:morris.dancing.at.wells.arp.jpg|섬네일|right오른쪽|250px|[[잉글랜드]] 웰스 지방의 웰스 대성당(Wells Cathedral) 정원에서 추는 [[모리스 춤]](Morris dancing)]]
{{본문|민속 무용}}
포크 댄스 또는 캐릭터 댄스라고 불리는 광의의 민속 무용은 전근대인 봉건시대에 있어서 하나의 사회적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집단의 흥취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놀이인 민속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봉건시대에 있어서는 장이로 불리는 이른바 기예인(技藝人)이었던 천민계급의 생계수단으로 명맥을 이어오거나, 또는 어느 마을이나 어느 계급·어느 지방의 소박한 놀이로서 전승되어 온 것 등도 있다. 예컨대 유럽지방의 [[마주르카]](Mazurka), [[미누에트]](Minuet), [[트로이카]](Troika), [[챠르다스]](Csardas), [[타란텔라]](Tarantella) 등과 한국의 [[탈춤]], 승무, 농악춤, 무당춤 등을 들 수 있다. 민속무용은 소박하고 단조로워 훈련하기가 쉽다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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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관객을 대상으로 대중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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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근년에 와서 [[뮤지컬]]은 대중의 인기를 끌어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크게 히트를 계속했던 [[제롬 로빈스]]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댄스와 노래와 드라마를 융합시킨 성공작이다. 이것은 다른 예술과의 종합적인 결부에 의한 무용의 새로운 국면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수렴적 방향은 무용만의 세계에 한정시킬지라도 발레와 현대 무용의 접근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봄의 제전]](祭典)>이라는 제재는 1913년에 [[바슬라프 니진스키]]가 안무(按舞)했으며, 1920년에는 [[마리 비그만]], 그 후는 전위적 발레인 [[모리스 베잘]]이 다루고 있다. 발레와 모던 댄스도 제재(題材)상에서, 또는 [[토우 슈즈]]를 신느냐 신지 않느냐에 따라 구별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토우 슈즈를 신지 않는 발레가 나타나, 다루어지는 제재도 현대 무용과의 구별을 지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각 무용단의 개성 같은 것이 제재에 반영됨으로써 표현의 수법을 결정하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