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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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JPG|
[[파일:안중근 의사의 저격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진 곳.JPG|섬네일|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서 안중근의 저격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진 곳]]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 배경 ==
4차례나 [[일제]]의 [[총리]]를 지낸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는 [[1905년]] [[대한제국]]과 [[을사늑약]]을 맺는 데에도 크게 역할했다. 그가 [[만주]]를 방문하여 러시아와 회담을 갖는다는 소식을 대동공보사에서 전해들은 안중근은 이토
10월 21일에 대동공보사 기자 이강(李剛)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안중근은 [[우덕순]]과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하얼빈]]에 도착했다. 당초 계획은 동청철도(東淸鐵道)의 출발지인 [[장춘]]의 남장춘(南長春), 관성자(寬城子)역과 도착지인
당국은 이토 일행의 안전을 위해 하얼빈 역 현장을 엄격히 통제할 예정이었지만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가 ‘많은 일본인들이 역 앞에서 이토 일행을 환영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청해 경호를 강화하지 않았다.<ref>노창현, [http://m.zum.com/news/home/12087167 ‘한국의 복수, 이토 히로부미 죽였다’ NYT 105년 [전 대서특필], 뉴시스</ref>
== 사건 과정 ==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일본 제국]]의 전 총리이자 제1대 조선통감이었던 [[추밀원 (일본)|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의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Vladimir Kokovtsov)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 역]]에
[[이토 히로부미|이토]]가 오전 9시 15분 하얼빈 역에 도착해 차내에서 약 25분 정도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코콥초프]]와 대화한 후, 그의 권유에 따라 명예 사령관으로서 러시아 수비병을 사열하기 위해 열차에서 내렸다.<ref name="전기">{{서적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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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i =
| id = {{ISBN|8995040432}}
}}</ref> 그가 수행원의 안내를 받으며 러시아 군대 앞을 막 지나가는 순간, [[안중근]]이 총알을 발사하여 [[이토 히로부미|이토]]를 명중시켰다. 그 중 두발은 복부에 맞았다. 안중근은 혹시 이토 히로부미가 아닐 것을 대비해 다시 3발로 주위의 수행비서관 모리 다이지로, 하얼빈
| 성 = 안
| 이름 = 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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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안중근은 그 다음 [[러시아어]]([[에스페란토어]])로 '꼬레아 우라[코레아 후라](
== 안중근 의사의 사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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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이토 히로부미]]
[[분류:저격]]
*슬픈건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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