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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옥구군]] 출생이다. [[군산고등학교|군산고등보통학교]]를 4학년 시절에 중퇴하였다. [[한국 전쟁]]으로 전란 시기였던 [[1952년]] 일본 [[조동종]]의 군산 [[동국사]]에 출가하여 중관학 권위자인 중장혜초로 부터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 승려가 되었다. 이후 10년간 경기도 강화 전등사 등의 사찰에서 [[참선]]과 방랑을 거듭하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958년]] [[조지훈]]과 [[장만영]]과 [[서정주]]의 공동 추천으로 인하여 《[[현대문학 (잡지)|현대문학]]》에 〈[[폐결핵 (시)|폐결핵]]〉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60년대 초에 본산 주지, [[불교신문사]] 주필 등을 지냈고,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을 내고 [[1962년]] 환속하여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몰두하게 되었다.
 
고은의 문학적 성향은 〈[[문의 마을에 가서]]〉를 낸 [[1974년]]을 기준으로 크게 둘로 나뉘는데, 그의 전기 시들은 허무의 정서, 생에 대한 절망, 죽음에 대한 심미적인 탐닉이 주를 이루는 반면 후기 시들은 시대상황에 대한 비판과 현실에 대한 투쟁의지를 담고 있다. 그 뒤 '자유실천 문인협의회' 대표로 행동면에서행동주의 관련 체제 면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데, 세계 각국에서 그가 잘 알려진 것은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것 이전에 그의 시가 20여개국에 번역되어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2005년 이후 여러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 되기도 하였다.<ref>[http://imnews.imbc.com/replay/2014/nw1800/article/3537658_13479.html 노벨상에 대한 오해와 진실…올해 이그노벨상 수상자는?] MBC TV( 2014.10.07) 기사 참조</ref><ref>[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71865 광교산 중턱… 30여년만에 삶터 옮긴 고은 시인] 경인일보(2013.10.02.) 기사 참조</ref> 그의 저명성은 매년 여러 나라에서 초청하는 등 그의 시가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북유럽]] 국가에서 그의 시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노르웨이]]에서는 자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을 기린 비에른손 훈장을 받았고, [[스웨덴]]에서도 자국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하뤼 마르틴손]]을 기리는 상인 동시에 동아시아권 문학에 주는 상인 시카다상을 수여하였다. 스웨덴의 한 언론매체 기사에서는 그를 [[군산시|군산]]의 제왕이라 칭할 정도였다.<ref>{{뉴스 인용|제목='고은 예찬', 스웨덴 언론들 특필|url=http://media.daum.net/culture/art/view.html?cateid=1021&newsid=20051108175614623&p=khan|출판사=경향신문|저자=이상주 기자|쪽=|날짜=2005-11-08|확인날짜=2009-10-05}}</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