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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장성 필암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로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종사된 [[동국 18현]] 가운데 한 사람인 하서 [[김인후]]의 학덕과 정신을학덕을 기리기 위해 [[1590년]](선조 23) 그의 문인 변성온(卞成溫)·기효간(奇孝諫)·변이중(邉以中)등 호남 선비들이 [[장성읍]] 기산리(岐山里)에 창건하였다.<ref>전라도 관찰사 오음 윤두수가 처음 발의하고, 송강 정철이 배알하였다.</ref>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으나, [[1624년]](인조 2) 호남 사림들의 노력으로 기산리 서쪽 증산동(甑山洞)으로 자리를 옮겨 복설하였다.<ref>호남 사림들은 김남중, 양천회, 양천경, 기효증 등이다. 사우(祠宇) 상량문(上樑文)은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이 지었다.</ref> 이후 증산동의 지대가 낮아 물난리로 흙다리가 위험해지는 등 수해를 입을 우려가 있어 [[1672년]](현종 13) 지금의 자리인 해타리(海打里)로 옮기고 마을 이름도 [[필암리]](筆巖里)라 하였다.<ref>이건에는 하서 증손 김형지(金亨祉), 외현손 이실지(李實之)를 비롯하여 박승화(朴升華, 기정연(奇挺然) 등이 주도하고, 장성부사 송시도(宋時燾)의 협조 하였다. 사우(祠宇) 상량문(上樑文)은 송암(松巖) 기정익(奇挻翼), 이건 고유문은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봉안 제문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이 지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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