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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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시조 '''[[김심언]]'''(金審言)은 [[경순왕]]의 후예로, 정주(靜州. 영광의 별호) [[영광군|영광현]](靈光縣) 사람으로 [[고려 성종|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 현종|현종]] 대에 예부상서・상서내사시랑평장사(尙書內使侍郞平章事)거쳐 서경유수(西京留守)를 지냈다. 문안공(文安公)의 시호(諡號)가 내려지고 오성군(筽城君 : 영광의 옛 지명)에 봉해져 후손들이 [[영광군|영광]] 관향으로옛 지명)에 하였다봉해졌다.
 
그는 [[990년]](성종 9) 상소문 <봉사 2조(封事二條)>를 올려 성종 때 본격화되는 유교적 정치이념 구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상시(常侍) 최섬(崔暹)의 사위이며 제자이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71098 『고려사』 권93, 열전6]</ref><ref><봉사 2조(封事二條)> 첫째는 [육정육사론(六正六邪論)]으로 신하의 도리를 언급하면서, 육정(성신·양신·충신·지신·정신·직신)을 행하면 번영하고, 육사(구신·유신·간신·참신·적신 및 망국의 신)를 범하면 욕이 된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자사육조(刺史六條)]에 관한 것으로 지방관이 해야 할 일 6가지를 기록하고 서경(西京)에 사헌(司憲) 1명을 분견하자는 것이었다.</ref>
 
[[1170년]] [[무신정변|무신의 난]]으로 무신들이 활개를 치자 [[1173년]] 후손 동북면병마사인 [[김보당]](金甫當)이 [[김보당의 난|의종 복위]] 거사를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멸족의 화를 당해 중간계대(中間系代)가 실전(失傳)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각 파조를 1세조로 하고 [[영광군|영광]]을 관향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 시조에 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