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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초등학교 (부산)|성지국민학교]], [[부산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ref name="승진가도 1">[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402041827081&code=940202 토목직 7급으로 출발 '승진가도'] 《경향신문》 2004년 2월 4일</ref>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에 진학하여 졸업하였다. [[1963년]] [[서울특별시청]] 토목직 7급 [[공무원]] 공채에 응시하여 합격하여 관료생활을 하였으며, [[서울지하철건설본부]] 건설차장, [[서울시청]] 도로국장, 도시계획국장을 역임하였다.<ref name="승진가도 1"/><ref name="조선 누구">[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402/200402040347.html 안상영시장은 누구] {{웨이백|url=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402/200402040347.html |date=20131012035954 }} 《조선일보》 2004년 2월 4일</ref> 이때 서울의 강남 개발을 주도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뒤 [[서울특별시]] 종합건설본부장으로 [[한강]]종합개발과 [[올림픽대로]] 건설을 주관하였다.<ref name="조선 누구"/>
 
[[1988년]] 관선 [[부산직할시장]]으로 부임하였다. 관선 시장 재직시재직 당시 부산 앞바다에 인공섬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ref name="승진가도 1"/><ref name="조선 누구"/> 인공섬 개발계획을 추진하다 포기하고 [[1990년]] [[해운항만청]] 청장으로장으로 부임했다.<ref name="조선 누구"/> [[1990년]] [[해운항만청]] 청장으로해운항만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인공섬 건립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ref name="승진가도 1"/> [[1992년]] 해운항만청장에서 물러났다.<ref name="승진가도 1"/> 그 뒤 [[한국항만협회]] 고문, 벽산건설 부회장 등을 지냈으며.<ref name="승진가도 1"/> [[한강]]개발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의 인연으로 [[1996년]] [[대우그룹]] 계열사인 [[부산매일신문]]사 사장에 임명되기도 하였다.<ref name="승진가도 1"/> 이후 2년간 부산매일신문사 사장을 지냈다.<ref name="조선 누구"/>
 
=== 정치 활동 ===
[[1998년]] 지방선거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수사를 받던 당시 [[문정수 (1939년)|문정수]] 시장을 당내 후보경선에서 누르고 출마, 선거에서 무소속 [[김기재]] 후보와 접전 끝에 부산시장에 당선되어<ref name="승진가도 1"/> [[1998년]] ~ [[2002년]] 민선 2기 [[부산광역시장]]을 역임하였고지냈다. 이로써 [[부산광역시]] 역사상 유일하게 관선 직할시장과 민선 광역시장을 모두 지낸 시장이 되ᆞㅓㅆ다. [[1998년]] [[7월]]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조직위원장, [[1999년]] 12월 초대 [[부산영상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2002년]] 자치단체장 선거에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 [[7월]] 민선 3기 부산광역시장에 취임하였다.
 
[[2003년]] 10월 진흥기업 박모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되었으며 10차례 공판을 치르면서 무죄를 주장하였다. 2002년 6월 지방선거 당시 부산 동성여객(현 [[삼성여객 (부산)|삼성여객]]) 등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가 추가돼 검찰의 추가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ref name="조선 누구"/> 이후 금품수수혐의로 복역 중이던 그는 [[2004년]] [[2월 4일]]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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