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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一然, 속명(본명) '''전견명'''(全見明), [[1206년]] [[7월 18일]]([[음력 6월 11일]]) ~ [[1289년]] [[7월 26일]]([[음력 7월 8일]]))은 [[고려 충렬왕]] 때의 승려로신라계 대승려로, '''보각국사'''(普覺國師)라고도 한다. 속성은 [[전 (성씨)|전]]씨, 본관은 [[옥산 전씨|옥산]](玉山), 속명 '''전견명'''(全見明)이며, 처음의 자는 회연(晦然), 나중에 '일연'으로 바꾸었다. 호는 무극(無極)·목암(睦庵), 시호는 보각(普覺)이며, 탑호는 정조(靜照)이다.
 
[[경상북도]] [[경산시|경산]](慶山)에서 출생하였고 [[1214년]](고종 1) 9세 때 해양(海陽)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학문을 닦다가 [[1219년]] 대웅에 의하여 승려가 되었다. [[1227년]] 승과(僧科)에 급제, [[1246년]] 선사(禪師), [[1259년]] 대선사(大禪師)에 올랐다. [[1261년]](원종 2) 왕의 부름으로 상경, 선월사(禪月寺) 주지가 되었고 목우화상(牧牛和尙)의 법통을 계승, [[1268년]](원종 9) 조지(朝旨)를 받고 운해사(雲海寺)에서 선교의 대덕(大德) 1백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개최, 그 맹주가 되었다. [[1277년]](충렬왕 3) 왕명으로 운문사(雲門寺) 주지에 취임, 1281년 왕에게 법설을 강조했고, [[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되어 원경충조의 호를 받고, 이 해 노모의 봉양을 위해서 고향에 돌아갔다. 다음해 조정으로부터 토지 백경(百頃)을 받아 경상도 군위(軍威)의 인각사(麟角寺)를 중건했고 궁궐에 들어가서 구산 문도회(九山門都會)를 개최했다. 그의 저서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의 신화와 민간설화를 수집하고, 특히 향가를 비롯한 불교 관계 기사를 수록, <삼국사기>와 함께 고대문학과 역사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 된다. 이 밖에 <조정사원(祖庭事苑)>30권, <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 30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