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라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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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당시까지 알안달루스의 무슬림과 기독교 인구 비율은 상당히 컸다. 모사라베는 무슬림에 대한 불평등한 상황에 처했으나, 나름대로 관대한 처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무슬림 정복 이후 몇세대를 거치면서 무슬림 군주들은 딤미에게 불리한 법령을 공표하기 시작하였고, 모자라베의 지위는 하강하여 엄격한 차별과 억압이 시작됐다. 그후 기독교인은 점점 고립되고 주로 행정·군사·사회상의 지위에서 쫓겨났으며, 그 밖에도 이슬람 법 아래에서 차별·억압을 받았다.
 
또한 11세기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적 성격을 가진 [[무와히드 왕조]]와 [[무라비트 왕조]]가 성립하면서부터이다. 특히 북부 [[십자군]]의 내습 이후에는 무슬림 측의 관대함이 상실되면서, 모자라베와 유대인에게 "죽음이냐? 코란이나코란이냐?"라는 선택을 떠안는 등의 노골적으로 탄압하는 사례도 볼 수 있었다. 모자라베는 박해 시대에 상당수가 북부의 기독교 왕국으로 이주했다. 따라서, 그것이 북부 기독교 왕국들의 반 이슬람 감정을 부추기고, [[레콩키스타]]를 통한 기독교 지배권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인에 의한 무슬림,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진행되게 만들었다. [[레콩키스타]]가 진행되면서 모자라베는 기독교의 여러 왕국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기독교의 왕들은 새롭게 정착한 모자라베에게 상당한 혜택을 주었다.
 
== 언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