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드비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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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크기 =
|설명 = 마르첼로 바차렐리(Marcello Bacciarelli)가 그린 야드비가의 초상화
|문장 = Coat of arms of Jadwiga of Poland.svg
|작위 = [[폴란드의 군주|폴란드 여왕]]
|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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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
}}
'''야드비가''' ({{llang|pl|Jadwiga}}
1375년 야드비가는 [[빌헬름 폰 외스터라이히]]와 결혼하기로 계획되었고, 1378년부터 1380년까지 야드비가는 비엔나에서 살았다. 1379년 야드비가의 맏언니였던 [[앙주 카탈린]]이 사망하면서, 야드비가의 아버지였던 러요시 1세는 야드비가와 빌헬름이 헝가리의 적합한 왕위계승자라고 여겼다. 같은 해 폴란드의 귀족들은 러요시의 둘째 딸인 [[마리어 (헝가리)|마리어]]와 마리어의 약혼자인 [[지기스문트 (신성 로마 황제)|지기스문트]]에게 충성을 약속했다. 하지만 러요시가 죽은 후 야드비가의 어머니인 에르제베트의 요구에 따라 마리어가 헝가리의 여왕이 되었다. 지기스문트는 폴란드의 왕이 되려고 했으나, 폴란드 귀족들은 러요시의 딸이 폴란드에 거주할 때만 딸에게 복종할 것이라며 지기스문트에게 반발했다. 에르제베트는 이에 따라 야드비가를 폴란드의 통치자로 선택했으나, 대관식을 치르는 곳인 [[크라쿠프]]에 야드비가를 보내지 않았다. 지도자의 부재 동안 [[시에모비트 4세]]가 폴란드 왕위 후보자가 되었다. [[비엘코폴스카]]의 귀족들은 시에모비트를 지지하고, 그와 야드비가의 결혼을 제안했다. 하지만 [[마워폴스카]]의 귀족들은 시에모비트를 반대하며 에르제베트에게 야드비가를 폴란드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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