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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중'''(閔鼎重, [[1628년]] ~ [[1692년]] [[6월 25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여흥 민씨|여흥]]으로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峯),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민유중]]의 형으로 [[인현왕후]]의 백부이다. 당색은 [[서인]](西人)이며, [[1689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될 때는 노론을 선택하였다. 산림 학자들의 중용과 [[민회빈 강씨]]의 복권 등의 여론을 주도하였다.
 
1649년(인조 27) 정시 문과에 장원 급제, 성균관전적이 되고 삼사와 승정원의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남인]] 유학자들의 등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대사성 재직 시 성균관의 개보수와 강과(講課)에 마음을 다해 선비 양성을 기울였고 함경도관찰사로 재직 중에도 그곳의 학구열과 문풍 향상 등 쇄신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