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학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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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과 졸업식===
 
[[1908년]] 이전에는 따로 졸업식을 하지 않았는데, 대부분 결혼함으로써 학업을 그만두었다.<ref name="한국최초"> {{서적 인용
|저자=김은신
|제목=이것이 한국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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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ISBN 9788985407359
|쪽=84~86쪽
}} </ref> 그래서 아예 과년한 여학생을 선교사들이 나서서 결혼시켜 주기도 하였다. 선교사가 여학생의 보호자가 되어 신랑감도 구해주고, 혼수도 장만해 주었다. 다만 조건이 까다로웠는데, 반드시 기독교[[개신교]] 종파인 북감리교북[[감리교]] 신자여야 했다.
 
이화학당 선교사가 주선한 결혼식 가운데 한국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은 1897년 4월 18일 열렸으며, 신랑 김륜시와 신부 조만수(趙晩秀)였다. 1879년생이었던 김륜시는 이화학당을 9년 동안 다닌 학생이었고, 조만수는 1876년 1월 1일에 과천에서 태어나서 17살 때 상경하여 이화학당장 조세핀 오펠리아 페인의 한국어 교사였다가 나중에 1899년 이화학당 회계 겸 초대 서무주사가 되었다. 김륜시는 결혼 후 당시 평동 91번지에 있던 이화지교(梨花支校, 일종의 부속학교)에서 근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