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푸스 1세 (상부르군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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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년 아버지 콘라트 2세가 사망했고, 아버지 콘라트 2세로부터 세인트 모리스 앙 발레(St Maurice en Valais) 평신도 수도원장직을 물려받았고, 부르군트 서부, 현재의 [[스위스]]서부 지역과 [[프랑슈콩테]] 지역의 막대한 영지도 물려받았다.
 
[[888년]] [[1월]] [[프랑크 왕국]]의 [[카를 3세]] 비만왕이 쿠데타로 폐위되자, 각지에서는 자립했다. 상 부르군트의 귀족들과 교회 성직자들은 성 모리스에서 모여 루돌프를 왕으로 선출하였다.<ref>Jackman, Donald C. (2008). Ius hereditarium Encountered II: Approaches to Reginlint. Editions Enlaplage. pp.14</ref> 루돌프는 선출 직후 [[로타링기아]]의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동프랑크 왕국]]의 새로운 왕 [[아르눌프 폰 케른텐]]은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일단 [[아르눌프 폰 케른텐]]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칭신하였다. 루돌프는 아르눌프의 봉신이 되는 조건으로 상부 부르군트의 왕 지위를 인정받는 대신, 로타링기아 영유권은 포기하였다. 그러나 루돌프와 아르눌프의 상호 적대감은 894년까지 직간접적으로 계속되었다.
 
루돌프 1세는 다른 이웃과의 혼맥을 형성했다. 그의 누이는 [[부르고뉴]] 공작 [[리샤르 정의공]]과 결혼했다. 이들의 아들은 후일 [[서프랑크 왕국]]의 군주가 되는 [[라울]]이다. 루돌프의 딸 아델라이드는 친척이었던 맹인왕 [[루트비히 3세]](하부 부르고뉴와 프로방스의 군주)와 결혼했고, 다른 딸 윌라는 토스카나의 보소와 혼인했다.
 
그의 영지는 아들 [[루돌프 2세]]에게 성공적으로 계승되었다. 그의 처 프로방스의 길라는 912년 아를의 위그와 재혼하였다. 한때 그는 부르고뉴의 공작이자 서프랑크의 9대 왕인 [[라울]]과 종종 혼동되기도 했다.
 
== 참고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