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푸스 1세 (상부르군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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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르고뉴의 루돌프 1세(Rudolph I of Burgundy, [[859년]] ~ [[912년]] [[10월 25일]])는 [[프랑크 왕국]]의 귀족으로, 상부 [[부르군트]](북부 [[부르고뉴]]) 일대의 유력 귀족이었다. [[888년]] [[1월]] [[카를 3세]] 비만왕이 폐위되자 상[[부르군트]]의 귀족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는 [[부르고뉴]]의 요새를 설립, 서부 스위스, 바젤, 발레, 아오사트 및 스위스 중부 일대에 요새를 건립하였다.
 
루돌프 1세는 대 벨브 가문에 속해 있었고, 오세르 공작 콘라트 1세의 손자였으며 트란스부르군트(상부르군트)의 공작 콘라트 2세 또는 청년 콘라트와 보름스의 발트라다의 아들이었다. 증조부 [[구엘프 1세]]는 황제 [[루트비히 1세 (프랑크)|경건왕 루트비히]]의 후처 [[유디트 (프랑크 왕국)|유디트]]와 [[동프랑크 왕국|동프랑크]] [[루트비히 2세 (동프랑크 왕국)|독일인 루트비히]]의 정처 [[헤마 (바이에른)|엠므]]의 친정아버지였다. 어머니 보름스의 발트라다의 친정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네우스트리아]]의 백작 [[클로베르투스 3세]](로베르트 3세)와의 사이에서 [[로베르투스 4세]] 용담공을 두었다. 이부 형인 로베르투스 4세는 [[서프랑크 왕국]] [[카를 2세]] 대머리왕의 측근으로, 후일 서프랑크 왕국의 왕 [[외드]]와 [[로베르 1세]]의 아버지가 되는 인물이다.
 
872년 하부르군트의 백작이 되었다. 876년 아버지 콘라트 2세가 사망했고, 아버지 콘라트 2세로부터 세인트 모리스 앙 발레(St Maurice en Valais) 평신도 수도원장직을 물려받았고, 부르군트 서부, 현재의 [[스위스]]서부 지역과 [[프랑슈콩테]] 지역의 막대한 영지도 물려받았다. 그는 880년~885년 사이에 프로방스의 길라(Guilla) 또는 윌라(Willa)와 결혼했는데, [[이탈리아인 루트비히]] 황제와 [[카를 2세]] 대머리왕의 외척이자 879년 [[프로방스]], 하[[부르군트]](남부 부르고뉴)에서 자립한 먼 친척 [[보소 5세 (프로방스)|보소 5세]]의 딸이었다.
 
[[885년]] [[2월 15일]] 그는 황제 [[카를 3세 (동프랑크)|카를 3세 비만왕]] 비만왕에게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는데, 당시의 한 문서의 표현에 의하면 후작은 황제의 충성스럽고 사랑받는 존재로 언급된다.<ref>Monumenta Germaniae Historica, Diplomata regum Germaniae ex Stirpe Karolinorum, tomus II, Kaiserurkunden Karl III, doc 112, p. 179</ref>
 
[[888년]] [[1월]] [[프랑크 왕국]]의 [[카를 3세 (동프랑크)|카를 3세 비만왕]] 비만왕이 쿠데타로 폐위되자, 각지에서는 자립했다. 상 부르군트의 귀족들과 교회 성직자들은 성 모리스에서 모여 루돌프를 왕으로 선출하였다.<ref>Jackman, Donald C. (2008). Ius hereditarium Encountered II: Approaches to Reginlint. Editions Enlaplage. pp.14</ref> 888년 봄, 그는 [[툴 (프랑스)|툴]]에서 아르노알드(Arnaud) 주교에 의해 부르군트와 로타링기아의 왕으로 축성되었다. 루돌프는 선출 직후 [[로타링기아]]의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동프랑크 왕국]]의 새로운 왕 [[아르눌프 폰 케른텐]]은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일단 아르눌프의 소환 요청에 응해 [[레겐스부르크]]를 방문, [[아르눌프 폰 케른텐]]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칭신하였다. 루돌프는 아르눌프의 봉신이 되는 조건으로 상부 부르군트의 왕 지위를 인정받는 대신, 로타링기아 영유권은 포기하였다. 그러나 루돌프와 아르눌프의 상호 적대감은 894년까지 직간접적으로 계속되었다.
 
894년 이후에도 그는 [[로타링기아]]의 영유권을 요구하였다. [[아르눌프 폰 케른텐|아르눌프]]는 자신의 서자 [[츠벤티볼트]]를 [[로트링겐]]의 왕으로 임명하여 내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