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천왕사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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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사천왕사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있던 불교 사찰의 사천왕사의 터로서, 사적 제8호이다. {{토막글|}} 분류:대한민국의 사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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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는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있던있는, 불교[[신라]] 사찰의시대 사천왕사의 터로서, 사적 제8호이다. 사천왕사는 [[신라 문무왕]] 당시 [[당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을 가진 사찰이다.
 
== 사천왕사 ==
사천왕사는 [[679년]](문무왕 19)에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나라 [[당 고종|고종]]이 신라를 공격하려 하므로 당시 당나라에 가 있던 의상(義湘)은 당에 갇혀 있는 [[김인문]](金仁問)·[[김양도]](金良圖) 등으로부터 사전에 이 내막을 듣고 [[670년]](문무왕 10)에 귀국하여 사태의 긴급함을 문무왕에게 알리고 명랑법사(明朗法師)로 하여금 679년에 사천왕사를 짓고 문두루(文豆婁)의 비법(秘法)을 써서 당병의 침략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 절은 없어지고, 남북이 105미터, 동서가 73미터의 터만 남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쌍탑가람제(雙塔伽藍制)에 따른 최초의 절이다. 금당(金堂)을 중심으로 남북은 긴 낭무(廊廡)로 둘러 있고 남쪽 낭무의 중앙에는 중문지(中文址), 북쪽 낭무의 중앙에는 강당지(講堂址)가 있다. 금당의 북쪽에는 좌경루(左經樓)·의경루가 동시에 있으며 남쪽에는 두 탑지가 있다.
 
== 유적 및 유물 ==
절터에는 현재 초석(礎石)·사천주(四天柱)의 초석 등이 있으며, 여기에서 우수한 부조(浮彫)의 당초문(唐草文)이 있는 와당(瓦當)·부전(敷塼)·녹유(綠油)의 화릉형전(花陵形塼)·사천왕의 부조전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 바깥 고리 ==
* [http://jikimi.cha.go.kr/newinfo/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3,00080000,37&queryText=V_KDCD=13 문화제 정보센터 - 사적 제8호 사천왕사지]
 
{{토막글|}}
[[분류:대한민국의 사적]]
[[분류:한국의 절]]
[[분류:신라]]
[[분류:삼국 시대의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