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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오딘지엠의 가장 큰 실책 가운데 하나는 토지 개혁 실패였다. 북쪽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공포정치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비엣민]] 시기 협력의 대상이었던 민족주의적 지주까지 예외 없이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던 것과는 달리, 지엠 정권은 별다른 토지 개혁을 하지 않아 농민들의 이반을 자초하였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인 [[메콩 강 삼각주]]를 비롯한 농지는 프랑스 식민지 시기 이래 지역 인구의 2%인 지주가 전체 토지의 45%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엠 정권이 실시한 토지 개혁은 매우 미약한 것이었다. 1956년 미국의 압력으로 발표한 토지 개혁은 지주의 토지 보유 면적을 1.15 Km²로 제한하였으나, 지주들이 가족에게 토지를 이양하는 것을 허용하여 사실상 토지 개혁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결국, 남베트남의 토지개혁으로 이익을 본 소작인은 10%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와 같은 남북의 토지개혁 차이는 농민들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지지하는 이유가 되었다.<ref name="WarBegan">[http://www.mtholyoke.edu/acad/intrel/pentagon/pent14.htm Origins of the Insurgency in South Vietnam, 1954–1960], The Pentagon Papers (Gravel Edition), Volume 1, Chapter 5, (Boston: Beacon Press, 1971), Section 3, pp. 314–346; International Relations Department, Mount Holyoke College.</ref>
 
1957년 5월 응오딘지엠은 미국을 방문하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아이젠하워]]는 응오딘지엠과 함께 [[뉴욕 시]]에서 퍼레이드를 열었고 지엠 정권에 대해 계속하여 지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공식적인 환영과 달리,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는 사적인 자리에서 지엠 정권의 악행을 알고 있지만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계속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ref name="Karnow p. 230">{{harvnb|Karnow|1991|p=230}}</ref><ref>마이클 매클리어, 유경찬 역,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을유문화사, 2002년, {{ISBN|89-324-6081-7}}, 108쪽</ref> 훗날 당시 [[미국의 국방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베트남 공화국의 새로운 후원자인 미국은 베트남 문화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간신히 몇 마디 말과 역사가 오랜 나라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고 기록하였다.<ref name="McNamara 377">McNamara, Argument Without End pp. 377–79.</ref>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영화 한 편 없는 상태였고, 응오딘지엠은응오딘지엠이 서구의 방법을 그대로 가져와 베트남 문제를 풀려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McNamara 377"/>
 
=== 불교계의 저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