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5 바이트 제거됨 ,  9개월 전
태그: m 모바일 앱 안드로이드 앱 편집
태그: m 모바일 앱 안드로이드 앱 편집
}}</ref>
 
1965년 미국은 베트남 주둔 민군의 사상자가 속출하자 곤경에 빠져 있었다빠져있었다. 1965년 3월 11일 김현철 주미대사는 조지 볼 미국무부 차관과의 면담을 통해 "한국 정부는 베트남에서 추가적인 병력을 기꺼이 파견하겠다."고 말했으며, 이동원 외부무 장관은 브라운 주한미국 대사와의 다음과 같이 협상을 한다했다.
# 파병 상한선은 5만명이내
# 한국군의 현대화 지원
}}{{깨진 링크|url=http://www.imhc.mil.kr/imhcroot/upload/resource/V13.pdf }}</ref>
 
대한민국의 베트남 파병 병력의 누계는 32만명에 달했다.<ref name=donga20080702>{{웹 인용|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7020125 |제목=1965년 전투병 베트남 파병 의결|publisher=[[동아일보]] |accessdate=17 July 2011 |date=2 July 2008}}</ref> 베트남파병 병사의 의무 기간은 1년이었고, 파병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8년 당시의 베트남에 주둔한 한국군의 수는 5만여 명이었다. [[파리 평화 협정 (1973년)|파리 평화 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하면서 대한민국 역시 철군하였다.<ref>Leepson 1999, p. 209.</ref>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한국군의 전사자는 약 5천여명이었고5천여 명이었고 1만 1천1천여 여명이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국군은 전쟁 중에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전투원 약 4만 1천1천여 여명을명을 사살하였다고 밝히고 있다.<ref name=donga20080702/> 미국은 한국군 병사에게 2억 3천 6백만3600만 달러를 지불하였고<ref name=donga20080702/>, 대한민국은 파병의 대가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대한민국의 [[GNP]]는 파병을 전후로 하여 5배 가량 성장하였다.<ref name=donga20080702/>
 
====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