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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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역사학자 클루체프스키에 따르면, 이반 1세 치세시의 모스크바 대공국의 발전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요인들에 의해 가능하였다.
* 첫째, 모스크바 대공국이 다른 러시아루스 대공국들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였으므로, 동쪽과 서쪽의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였다.
* 둘째, 지속적인 외적의 침입에 시달리던 모스크바 주변 소국들의 백성들이 대거 모스크바로 유입됨에 따라, 노동력을 확보하고 많은 세금을 징수할 수 있었다.
* 셋째, 나보그라드에서 [[볼가 강]]까지 이어지는 무역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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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1세 치세시에 모스크바 대공국은 아주 부유해졌는데, 그는 이 돈으로 주변 대공국들에게 대출해주기도 하였다. 이반 1세로부터 돈을 빌린 공국들은 점점 더 빚더미에 앉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이반 1세는 공국들을 하나씩 합병해 나갔다.<ref>백성들이 이반 1세를 일컬어 "루스 영토의 수집가"라고 칭할 정도였다.</ref> 그는 [[모스크바]] 주변의 영지들을 사들였는데, 가난한 주인들이 스스로 땅을 파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리하여 루스의 수많은 공국들은 차례로 모스크바 대공국에 흡수되어갔다.
 
마침 이반 1세의 아들 [[시메온 이바노비치]]가 블라디미르 대공직을 세습하는 것에 대하여 칸의 승인이 거의 확실시되자, 그 이후부터 중요한 직위는 항상 모스크바 대공 가문의 몫이 되었다. 절대적인 권위를 자랑하던 뿐만 아니라, [[러시아동방 정교회]]의 수장은 아예 블라디미르에서 모스크바로 옮겨갔다. 이반 1세는 [[성당]]도 많이 축조하였는데, [[1333년]]에 완공된 대천사 미가엘 성당은 훗날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묘지가 되었다.
 
모스크바 대공국을 부강한 나라로 이끈 이반 1세는 [[1339년]] [[2월 1일]]을 기하여 아들 [[시메온 이바노비치|시메온]] 공자에게 대리청정을 부여한 후 이듬해 [[1340년]] [[3월 31일]]을 기하여 향년 5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아들 시메온은 모스크바 대공과 블라디미르 대공직을 동시에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