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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후한 말, 한나라는[[한나라]]는 잇달은 환관과 외척의 전횡으로 인해 크게 쇠락했다. 당시에는 환관이 정권을 잡아 매관매직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관리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는데, [[낙양]](洛陽)의 [[태학]]을 중심으로 모인 사대부들은 청의당을 자칭하며 이같은 환관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대거 숙청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두 금고형에 처해진다. 이것이 유명한 [[당고의 금]](黨錮之禁) 사건인데 이로 인해 한 제국은 완전히 민심을 잃어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점차 말기적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 같은 양상은 마침내 황건적의 난 같은 백성들의 불만을 결집한 전국적인 규모의 반란으로 발전되었는데, 정권을 잡고 있던 환관 일파와 그들에게 돈을 바치며 벼슬을 샀던 무능한 관리들로서는 이와같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능력 부족을 시인한 조정은 20년 이상 지속되어 왔던 당고를 해제하고 청의파 관료들을 기용하여 반란을 진압하는 데에는 성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힘을 얻은 청의파는 오히려 역공을 가해 환관세력을 절멸시키고 만다.
 
이를 주도했던 인물은 청의파 중에서도 젊고 과격파의 필두로 여겨지던 [[원소 (후한)|원소]](袁紹)였다. 하지만 원소는 정권 장악에 실패했는데, 이는 [[십상시의 난]]으로 인한 [[영제]](靈帝)의 승하와 외척이었던 대장군 [[하진]](何進)의 죽음, 십상시의 몰살 등이 이어진 극심한 혼란을 틈타 군대를 이끌고 수도에 입성한 장군 [[동탁]]이 황제의 신병을 확보하고 금군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