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천강지곡"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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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조선 세종 28년(1446) 소헌왕후 심씨가 죽자 세종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에게 명하여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 곧 『석보상절』이다. 세종 29년(1447)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
 
월인천강지곡 권상(月印千江之曲 卷上) 체재의 특색을 항목별로 살펴보면, 첫째, 한글은 큰 활자를 쓰고 이에 해당되는 한자는 작은 활자를 썼다. 둘째, 한글의 자체는 『용비어천가』와 같으나 원점을 쓰지 않았다. 셋째, 『훈민언해』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받침 없는 한자음에 ‘ㅇ’의 종성을 붙이지 않았다.
 
최초의 한글활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유물로, 조선 전기의 언어와 어법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 국보 승격사유 ==
{{인용문|1=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그의 아내인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은 찬불가이다. 훈민정음 창제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짓고 활자로 간행한 점에서 한글 창제 후 초기의 국어학 연구와 출판인쇄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비록 3분의 1 정도만 남은 零本이나 이 책이 갖는 국어학적, 내지 출판 인쇄사적 가치는 매우 높다는 점에서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있다.<ref name="문화재청고시제2016-15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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