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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불교]]와 [[자이나교]]의 출현 이전에도 바이샬리는 [[리차비족|리차비 국]]의 수도였다.[7][8] 그 시기에 바이샬리는 고대 대도시였으며 바이샬리 공화국의 수도였으며, 현재의 인도 비하르 주의 [[히말라야]] - [[갠지스강]]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샬리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비슈누 푸라나]]는 바이샬리를 다스렸다는 34명의 왕을 기록하였는데, 바이샬리의 초대 국왕 ''나바가(Nabhaga)''는 인권의 문제로 자신의 왕위를 내놓고 "나는 이제 땅을 자유롭게 경작하는 사람이 되었소. 내 땅을 다스리는 진정한 왕이 되었소."라고 선언했다고 여겨지고 있다. 34명 중 마지막은 [[힌두교]]의 신 라마 왕자의 아버지인 다사라타(Dasaratha)의 동기로 여겨지는 ''스마티(Sumati)''였다.
 
바이샬리는 불전문학 뿐 아니라 많은 민담에 등장하는 유명한 유녀 암바팔리가 활약했던 땅으로도 유명하다. 암바팔리는 [[석가모니]]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 마누데프는 바이샬리의 연맹을 이루고 있는 저명한 리차비 가문의 유명한 왕이었는데, 그는 바이샬리에서 그녀의 춤 공연을 본 후 암바팔리를 소유하기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