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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샬리의 석가모니 부처 ==
[[File:Buddhist Altar, Vaishali.jpg|left|220px|thumb|바이샬리의 비하라 강변에 위치한 불교 사원]]
석가모니 부처의 시대, 바이샬리는 널리 상업도시로 알려져 있었고, 불경 및 불전문학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바이샬리는 석가모니 부처와 인연이 깊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출가한 뒤 가장 먼저 바이샬리에 와서 [[우드라카 라마푸트라]]와 [[알라라 칼라마]]의 문하에서 수행하였던 적이 있으며,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바이샬리를 자주 방문했다. 특히 그는 바이샬리에서 이루어지던 [[민주주의]]적 방식에서 따서 자신의 교단(상가)을 조직했다. 불교 교단을 의미하는 '상가'(僧伽)라는 단어는 원래 이 지역에서 발생한 상공업자들의 동업조합(길드)이나 [[공화제]]를 의미하는 단어였으며, 그 조직을 불교 교단 측이 채용하면서 이름 역시 따온 것이었다.<ref>『불교의 탄생』(원제: 仏教かく始まりき) 미야모토 케이이치(宮元啓一) 저/한상희 역, 春秋社불광출판사, p872018</ref><ref>『붓다의 마지막 여행』(원제: ブッダ最後の旅)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저/이경덕 역, 도서출판 열대림, 2006</ref>
 
또한 그가 상가를 세우고 이모이자 양어머니인 마하프라자바티의 출가를 받아들인 곳도 이곳 바이샬리에서였으며, 석가모니 부처는 입멸 석 달 전에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하안거]]를 보내고, 어느 날 탁발을 하고 돌아오는 언덕에서 그를 모시던 제자 아난다(아난존자)에게 "아름다운 바이샬리를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열반을 예고하였다. 쿠시나가라로 떠나기 전, 석가모니 부처는 바이샬리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자신의 발우를 남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