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샬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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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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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자이나교]]의 출현 이전에도 바이샬리는 [[리차비족|리차비 국]]의 수도였다. 그 시기에 바이샬리는 고대 대도시였으며 바이샬리 공화국의 수도였으며, 현재의 인도 비하르 주의 [[히말라야]] - [[갠지스강]]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ref>{{
바이샬리는 불전문학 뿐 아니라 많은 민담에 등장하는 유명한 유녀 암바팔리가 활약했던 땅으로도 유명하다. 암바팔리는 [[석가모니]]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 마누데프는 바이샬리의 연맹을 이루고 있는 저명한 리차비 가문의 유명한 왕이었는데, 그는 바이샬리에서 그녀의 춤 공연을 본 후 암바팔리를 소유하기를 원했다.<ref>{{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아비셰크 푸쉬카리니(Abishek Pushkarini, 즉위의 연못)라는 인공 호수가 있는데 바이샬리의 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하던 곳으로, 호수의 물을 바이샬리의 지도자로 새로 선출된 자의 머리에 부었다고 한다. 호수 인근에는 일본의 법화종 계열의 불교 종파인 닛폰잔 묘호지 대승가(日本山妙法寺大僧伽)가 지은 일본식 불교 사찰과 비슈와 샨티 스투파(세계평화탑)가 서 있다. 바이샬리에서 발견된 석가모니 부처의 유물의 작은 부분이 스투파의 기단과 차트라에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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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샬리의 석가모니 부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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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의 시대, 바이샬리는 널리 상업도시로 알려져 있었고, 불경 및 불전문학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바이샬리는 석가모니 부처와 인연이 깊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출가한 뒤 가장 먼저 바이샬리에 와서 [[우드라카 라마푸트라]]와 [[알라라 칼라마]]의 문하에서 수행하였던 적이 있으며,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바이샬리를 자주 방문했다. 특히 그는 바이샬리에서 이루어지던 [[민주주의]]적 방식에서 따서 자신의 교단(상가)을 조직했다. 불교 교단을 의미하는 '상가'(僧伽)라는 단어는 원래 이 지역에서 발생한 상공업자들의 동업조합(길드)이나 [[공화제]]를 의미하는 단어였으며, 그 조직을 불교 교단 측이 채용하면서 이름 역시 따온 것이었다.<ref>『불교의 탄생』(원제: 仏教かく始まりき) 미야모토 케이이치(宮元啓一) 저/한상희 역, 불광출판사, 2018</ref><ref>『붓다의 마지막 여행』(원제: ブッダ最後の旅)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저/이경덕 역, 도서출판 열대림, 200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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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셰크 푸쉬카리니(즉위의 연못) ===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아비셰크 푸쉬카리니(Abishek Pushkarini, 즉위의 연못)라는 인공 호수가 있는데 바이샬리의 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하던 곳으로, 호수의 물을 바이샬리의 지도자로 새로 선출된 자의 머리에 부었다고 한다.
=== 세계평화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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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개발 ==
2019년 2월 비하르 니티시 쿠마르(Bihar Nitish Kumar) 부장관이 부처님 삼야크 다르샨 박물관과 기념 스투파(Memorial Stupa)의 초석을 세워 석가모니 부처의 유물을 보관하였다.<ref>{{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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