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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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는 러시아어로, 루스 사회에서는 원래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에 한해서만 사용되었던 칭호다. [[1453년]]에 [[비잔티움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차르]]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또한 [[모스크바]]에 있던 [[동방정교회]]의 주교좌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모스크바는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뒤를 잇는 제3의 로마라는 인식이 생겨나는 등 모스크바 대공국 내에서는 제국을 자부하는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547년]]에는 이반 3세의 손자 [[이반 4세]]가 자신을 전 루스의러시아의 [[차르]]라고 하면서, 모스크바 대공국의 군주는 곧 전 루스의러시아의 군주이며 로마 황제의 계승자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칭호는 단지 국내용에만 머물렀으며,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오랫동안 루스의 군주를 황제는 커녕 왕도 아닌, 단순히 모스크바 대공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반 4세가 죽은 후, 국내가 혼란스러워지면서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동란 시대]]). [[1606년]] 이후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코사크]], [[스웨덴]] 등이 러시아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대동란은 정점에 다다랐다. [[1610년]]에는 당시 [[선진국]]이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수도 모스크바가 점령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모스크바인들은 [[로마노프 왕조]] 등을 중심으로 국민군을 결성하여 외세에 대해 맹렬히 저항했다. [[1612년]], 10만에 이른 국민군 병사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군을 물리치고 모스크바를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