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개성상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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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토''':델 로치 상사 총지배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이 없이 자란 터라 [[성격]]이 냉정하다. 상사원이 실수하면 감싸주는 것이 아니라 문책한다. 델 로치 상사의 후원을 받아 베네치아 공화국정청 [[10인 위원회 (베네치아)|10인위원회]]의 보좌관으로 일함으로써 [[베네치아 공화국]] [[정치]]에 입문. 유리입찰을 할 때에 경쟁기업인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 대리인 기슬란티로부터 회유되어, 나폴리 공화국 왕립공작소 로렌제티 자작과 안토니오 코레아 델 로치 상사 임시대리인 사이의 계약내역(2만 [[두카트]]를 수수료로 지급, 실권약관부 계약으로서, 델 로치 상사와 왕립공작소 사이의 유리입찰계약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계약효력이 없음)을 유출한 로셀리노를 징계[[해고|해]]고를 했다.
*포르타:안토니오의 친구. 델 로치 상사 창고[[서기]]때부터 같이 일했다.[[글]]도 모르는 자신과는 달리-근대 유럽에서 [[지식인]]들은 [[귀족]]들이었고, 상인들은 글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학문이 없었다고 한다.- 박식한 안토니오를 따르며 같이 고생한 사이이다.안토니오는 [[건강]]이 나빠져 은퇴하게 되자 포르타를 [[주주 회의]]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델 로치 상사를 경영할 후계자로 정하고 ,성격이 차분한 팔라디오에게 부탁하여 성격이 적극적이고, 판단도 빠르지만 성급피한 단점이 있는 포르타를 보좌하도록 한다. 훗날 유명훈은 델 로치 상사의 뒤를 이어 수백년동안 내려온 장수기업인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캄파넬라 상사의 자료실에서 우연히 안토니오 꼬레아에 대한 단서들을 찾았는데, 안토니오 꼬레아가 개성상인의 전통 [[회계]]방식([[사개송도치부법]])으로 쓴 회계장부와 포르타가 동양에서 온 은인이라며 안토니오를 칭찬한 글이었다. [[라틴어]]로 포르타(Porta)는 [[문]]을 뜻한다.
*'''알베르토:'''안토니오의 라이벌. 안토니오가 독일 [[푸거|푸거 가]] [[부도]]에 따른 [[한자 동맹|한자]](Hansa)상인들의 연쇄[[부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사이의 오랜 갈등이 [[프라하 창밖 투척사건|프라하 투척사건]]을 계기로 한 [[전쟁]]으로 터진 [[30년 전쟁|30년전쟁]]에서 개신교와 가톨릭 중 어느 편을 들어 전쟁특수를 누릴 것인가를 논하는 토의(토론의 일종. 주제를 정해서 찬성과 반대의견을 주장하는 찬반토론과 달리, 찬반을 따지지 않고 의견을 논하는 회의)하는 회의 때 안토니오가 놀랄만큼 해박한 국제[[시사]] 지식과 회계사 자격증, [[외국어]]([[독일어]])구사능력 그리고 유럽사회의 비주류이지만 재력이 뛰어난 [[유대인]]들과도 [[인맥]]을 활용할 정도로 유능한 상사원이다.[[30년전쟁]]당시 델 로치 상사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자, [[개신교]]와 거래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피렌체 공화국|피렌체]]공화국에서 집사로서 일한다. 그의 능력을 생각했을 때에 심각한 몰락이다.
 
==== 현대 이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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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실존인물,안토니오의 [[멕시코]] 항해를 수학이론 제공으로써 도움. 피렌체공화국이 고향인 갈릴레오 교수(피사대학교 수학교수)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고향인 갈바와의 사이에서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아들은 석학인 부친의 연구를 돕고, 두 딸은 [[교황 클레멘스 1세|성 클레멘스]] 수도원안의 [[수녀원]]에서 살았던 터라 가끔 따님들을 보러 왔다가 미카엘 수사로부터 델 로치 상사의 부지배인인 안토니오가 멕시코에 장삿배를 타고 가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연구한 수학이론으로써 안토니오가 무탈하게 항해를 준비하도록 도왔던 것.
*레오나르도 로렌제티 : [[자작]], 나폴리 왕립공작소 총재.[[자작]].[[에스파냐]] [[펠리페 2세]] 국왕의 친척. 그래서 로렌제티 자작이 안토니오의 이야기를 듣고 교황청에 [[베네치아 공화국]] 피아제타 공장에서 생산한 유리를 매매계약서를 첨부하여 로마교황청 사무처에서 주관하는 유리입찰에 응하자, 유리입찰을 놓고 다투던 메디치 가문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기슬란티가 이름만 빌려서 응찰한 것쯤이야 교황청에서 막을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자, 루시아니 공녀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급하게 내가 온 것 아닙니까? 로렌제티 자작이 누구인가? 에스파냐 국왕인 [[펠리페 2세3세]] 폐하의 가까운 인척인데... 정식으로 매매계약서까지 첨부했다는데... 그렇게 하면 트집잡을 것이 없다는 말이야!"라고 대답한다. 로렌제티는 남부 이탈리아가 [[차별]]받는 현실에 고민하고 있었다. 똑똑한 승업이 로렌제티 자작의 마음을 읽어내고, 로마교황청와 유리를 거래하면 남부 이탈리아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진출할 수 있다고 설득한 덕분에 로마교황청에 [[수수료]] 없이 유리공개입찰에 참여하여 거래한다.만일 거래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안토니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로 너그러운 사람이다.
*고졸리에 : 로렌제티 [[자작]]과 같이 일하는 나폴리 왕립공작소 법률고문. 안토니오가 [[로마법]]에 해박하자 진지하게 토론한다. 글을 쓰기 위해 [[로마 시민권|로마시민법]]도 공부한 오세영 작가의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는 인물.
*루시아니 공녀: [[토스카나 대공국|토스카나대공국]]의 공녀. [[금융]][[부르주아지|자본가]] 가문이자 [[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교회]]의 [[교종 (동음이의)|교종]], [[프랑스 왕국|프랑스]] 왕실의 왕비(언니가 프랑스 왕실의 왕비인 카트린 데 메디치이다.)등을 배출한 명문가인 [[메디치가|메디치 가]]의 따님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델 로치 상사를 대표하는 안토니오와 유리입찰을 놓고 최선을 다해 다투고, 다툼에서 지자 안토니오에게 "그 완고한 로렌제티 자작을 무일푼으로 부려먹다니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에게 들은 것처럼 역시 대단하군요. 안토니오 코레아. 정말 탄복했어요. 이건 비르투오소(virtuoso,[[전문가]])를 만난 기념입니다. 이탈리아는 당신같은 비르투오소가 필요해요"라면서 17세기 유럽사람들에게 귀한 물건이었던 [[손수건]]을 선물할 정도로 자신의 패배와 상업에 능통한 승업의 능력(나폴리 공작소 로렌제티 자작의 마음을 읽음, [[유리]]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규사]]를 델 로치 상사가 산 내역,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가 유리를 운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등을 근거로 한 정확한 입찰가격 계산 등)을 겸손하게 인정한다. 메디치 가를 대표하여 17세기 [[가톨릭교회]]내의 권력이었고, 팜필리 신부의 견제로 약해진 가문의 힘을 되살리려던 바르베리니 가, 베네치아 공화국 델 로치 상사와 경쟁하던 피렌체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 상사와 함께 [[유리]]입찰을 주도한 여장부([女丈夫]성격이나 행동이 시원시원하고 씩씩한 여자를 ‘대장부’에 빗대어 이르는 말(다음국어사전))이다. [[에스파냐]] 왕실의 인척인 로렌제티 자작과 로마로부터 조금 떨어진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라테리노라테라노 교회에서대성당]]에서 만난 자리에서 "승산없는 싸움을 벌인 용기가 대단하더군요"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솔직히 로렌제티 자작이 유리입찰에 응한 것이 마음에 걸려요. 메디치 가는 상당히 유리입찰을 준비했거든요. 응찰에서 사퇴해주셨으면 해요. [[에스파냐]] 왕실이 [[네덜란드 독립 전쟁|네덜란드 독립전쟁]] 기간이라 군자금을 메디치 가로부터 빌려쓴 돈 중에서 올해에 갚아야 할 50만 [[두카트]] [[채무]]를 무이자로 1년뒤로 미루어드릴 수 있어요(회계용어로 이월이라고 한다.)"는 제안을 했다. [[대화]]와 타협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사람을 읽는 능력도 뛰어나서,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의 기슬란티에게 "기슬란티, 그대는 아직도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오? 내가 알기로는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아시아인|동양인]]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던데?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에게 들은 기억이 나서 피렌체에 연락해보니, 예상대로 카를레티가 [[동양]]에서 데려온 [[노예제|노예]]라더군. [[예수회]] [[수사]]에게서 법률(로마시민법)도 많이 배웠고, 판단력도 날카롭다는 거야!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나요"라고 했다.
*구에르치노 : 안토니오가 회계부에 있을 때에 상사였음. 심장병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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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명훈:정명물산 기획조정실 부장. [[한국전쟁]]으로 [[개성]]에서 내려온 [[실향민]]의 아들이다. [[천주교]] 신자인 유명훈은 자신과 [[세례명]]이 같은 안토니오 꼬레아에 관심을 갖는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학문과 취업중에서 취업을 택함.
*김영주:정명물산 정명어패럴 제품기획실 과장.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 [[뉴욕]]에 이민하여, 한국의 [[덤핑]]무역을 조사하러 온 [[미국 상무부]] 오코너 조사관조차오코너조차 잠시 당황했을 정도로 [[영어]]와 [[미국]]사회에 능통하다. 김영주 과장은 정명물산 취직과 취직 후에 어떻게 일할 것인지를 빈틈없이 준비했으므로,박식(아는 것이 많고 지식의 범위도 넓음)과 [[감각]]으로 정명물산 임원들을 상대로 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자신의 생각(미국시장에서 [[노동자]] [[작업복]] 같은 저가품이 아닌 한 개(피스)에 천 달러인 고가[[옷|의류]]를 팔아야 합니다. [[1985년]]부터 [[한미섬유협정]]으로써 [[시장]]점유율을 1년에 0.05%씩 가산하여, 내년에는 0.9%로 높임으로써 어렵게 얻은 [[시장]]이니 이익이 남지 않아도 잃어서는 안 됩니다.)을 [[논리]]적([[생각|사고]]와 [[추리]]에 능란함)으로 설명한다. 미리 준비한 [[파리]] [[패션쇼]] [[비디오]]와 유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색상과 미국의류시장을 [[표]]로 정리한 [[차트]]<ref>차트는 종이에 프레젠테이션하려는 내용을 적고, 넘기면서 말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말한다. 지금은 [[한컴오피스]]에 포함된 [[한쇼]]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에 포함된 [[파워포인트]]를 사용한다.</ref>로써 의류산업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장사 전문가들인 [[임원]]들이 날카롭게 질문하면 빈틈없이 대답했던 것. 임원 한 사람이 "[[개발도상국]]이 모방한 제품을 만든다면, 개발도상국에 좋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하자,"스키밍 프라이스로 즉 비싸야 잘 팔리는 의류를 시장에 내놓는 고가유지정책을 펴고, [[비용]]을 제외한 [[당기순이익]]이 발생했을 때에 가격을 낮추면 됩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남정필 섬유본부장이 "한 개에 얼마씩 가격을 매겼길래, 스키밍 프라이스로 한다는 거요?"라고 김영주 과장의 기발한 착상에 놀라워하고, 김영주 씨는 "한 개에 1천달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임원들을 놀라게 했다. 실제 기업[[직원|임원]]들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때에 궁금한 점을 자세히 물어본다고 한다. 저가 제품에 의존해서 무역을 해 오던 정명물산으로서는 김영주 과장의 혁신적인 생각에 주저하지만, 열정에 감동한 유명훈 부장의 꾸준한 인정과 지지를 받으며 꾸준히 계획을 추진하여 미국 [[블루밍데일스|블루밍데일즈]] 백화점과 [[윌리스 타워|시어즈 타워]]에서 한국산 고급의류가 크게 인기를 끌도록 한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고 [[성격]]도 용감하여, 유명훈 부장이 부사장으로 취임한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에서 기획한 [[다카르렐리]]에 통역으로 참여한다. 의류마케팅전문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했다. 어릴적 돌아가신 부친과 비슷한 나이의 유명훈 부장을 존경하며,유명훈의 부하인 김진철 대리와 연예함.
*김진철 대리:정명물산 기획조정실 대리.[[경제]]연구소로 이직할 때까지 유명훈 부장과 같이 일함.국제[[금융]] 전문.유명훈 부장에게 능숙한 [[PC]]실력으로써 [[그래프]]를 만들어 국제금융의 흐름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공부했음. 적성에 맞지 않는 상사원보다는 적성에 맞는 정명경제연구소에서 일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김진철 대리와 자신의 소신대로 일하는 김영주 과장을 보면서 유명훈 과장은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자신과 다른 세대들임을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