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클레멘스 7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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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스 7세는 포로의 신분으로 약 7개월 동안 산탄젤로 성 안에 감금당한 채 지냈다. 1527년 12월 초순경 제국 관리들을 돈으로 매수한후에 뱃사공으로 위장한 채 산탄젤로 성을 탈출하였고, [[오르비에토]]로를 거쳐 [[비테르보]]로 피신하였다. 제국군은 1528년 2월 중순경이 되어서야 로마에서 철수했다. 그해 10월경 클레멘스 7세는 비로소 로마로 돌아올수 있었지만, 이미 인구는 급감하고 시내 곳곳은 황량해진 상태였다. 1527년에 있었던 인구조사에서 로마에는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약 5만 5,000명이 거주하였는데 이번 약탈로 인한 사상자와 국외 도피자는 총 4만 5,000명정도 였다고 한다.(사망자 약 1만 2,000명)
 
'''전후 수습''' (피란체 탈환과 혼인동맹)
 
그 동안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의 적대자들이 혼란한 정국을 틈타 권력을 장악하고 피렌체에서 교황의 가족들을 다시 축출하였다. 이듬해 6월 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바르셀로나 평화조약에 서명하였다. 교황령은 몇몇 도시를 되찾았으며, 카를 5세는 메디치 일족이 피렌체 공화국을 지배하는 것과 군사적 원조를 통해 피란체 탈환을 돕기로 했다. 1530년 2월 24일 볼로냐(Bologna)에서 카를 5세를 위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대관식<ref>교황에 의해 치루어진 마지막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대관식으로 알려져 있다.</ref>을 거행하며 양자간에 화해의 이정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