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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장기집권에 비판적이었으며 [[신민당 (1967년)|신민당]] 소속 제9대 국회의원으로 재직 중이던 [[1975년]] 10월 8일, 정기국회의 대정부질의 중 안보궐기대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박정희]]를 독재자로 규정했다가 발생한 '김옥선 파동'으로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에서 김옥선 의원의 제명을 추진했고, [[신민당 (1967년)|신민당]]은 김옥선과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주장했다.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를 시킴에도 [[신민당 (1967년)|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중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고, [[신민당 (1967년)|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역으로 김옥선 의원을 찾아와 도와주기는커녕 사퇴를 종용했다.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였고, 공민권도 박탈되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출범 후인 [[1984년]] 해금되어 해금 정치인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신한민주당]]에 복귀했다. [[1992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다시 이름이 알려졌다. [[1996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당파국민연합 전국구 후보(1번 윤영오, 2번 김옥선, 3번 김상명, 4번 진원규, 5번 김헌기, 6번 안재식)로 지명되었으나 낙선했다.<ref>{{서적 인용|저자=중앙선거관리위원회|제목=대한민국정당사 제5집|연도=2009|쪽=301~341|장=제4장 정당 활동 - 제1절 선거활동 - 4. 제15대 국회의원선거}}</ref>
 
== 정계 은퇴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