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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성종|성종]](成宗) 2년(983년) 12월 정광(正匡) [[최승로]](崔承老), 병관어사 [[유언유]](劉彦儒), 좌승 [[노혁]](盧奕)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여 진사를 뽑았는데, 이때 성종이 복시(覆試)를 보아 갑과(甲科)로 급제한 인물이 [[강감찬|강은천]](姜殷川)이었다. 이밖에 을과(乙科) 2명과 명경업(明經業) 1명이 급제를 받았다.<ref name="고려사 선거지">《고려사》권제73 지제27, 선거1 과목1 과거장</ref>
 
성종 5년([[985년]])과 6년([[987년]]) 3월 이몽유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였다.<ref name="고려사 선거지"></ref> 성종 6년 과거의 경우 이몽유가 선발한 갑과 정우현과[[정우현 (고려)|정우현]](鄭又玄)과 명경1명, 복업 1명, 의업 2명, 명경업 2명에게 성종이 직접 교서를 내려를 급제를 주었는데, 이는 한국의 왕조에서 과거 급제자에게 국왕(황제)가 교서(조서)를 내린 최초의 사례였으며<ref>《고려사절요》권2 성종문의대왕 성종 6년 8월</ref> 이 달 25일에 성종이 중앙이나 지방에서 올리는 주장 및 관청에서 주고 받는 공문서의 양식을 상정할 것을 명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때 공문서 양식의 상정을 맡은 인물 역시 이몽유였다.<ref>《고려사》권제3 세가제3 성종 6년(987년) 8월 25일 을묘</ref>
 
이몽유는 사후 최승로 등과 함께 성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ref>《고려사》권제5 세가제5 현종 18년(1027년) 4월 12일 임오</ref> 배향시 관직은 태위 내사령(太尉內史令)으로 시호는 정헌공(貞憲公)이었다.<ref>《고려사》권제60 지제14 예(禮)2 길례대사 태묘 체협공신배향어정</ref> [[고려 덕종|덕종]](德宗) 2년([[1033년]]) 사공(司空)이 증직되었다.<ref>《고려사》권제5 세가제5 덕종 2년 10월 12일 갑신</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