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 베어스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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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혁이 이적한 후 이번에는 [[심재학]]이 2001년 2월 두산으로 오면서 10번을 달게 되었다. 심재학은 [[2001년 한국시리즈|2001년 한국 시리즈]]의 우승 주역이 되었고 더불어 성적도 타격 2위인 0.344에 홈런 24개, 88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는데 2002년과 2003년에 거짓말 같이 패망, 결국 2004년 KIA로 이적하면서 10번의 주인은 사라졌다.
 
더군다나, OB 베어스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 주동자 중 한 명이었던 [[김종석 (1971년)|김종석]]은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했지만 [[1996년]] 허리부상으로 인해 어렵게 잡은 주전 자리를 빼앗겼고 설상가상으로 [[1998년]] 입단한 우즈 때문에<ref>{{뉴스 인용
| 제목 = 김종석 방망이 불붙었다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5&aid=0000363010
| 출판사 = 한국경제
| 저자 = 고경봉
| 쪽 =
| 날짜 = 2001-04-16
| 확인날짜 = 2020-02-10
}}</ref> 주전 입성에 실패했으며 급기야 이중계약으로 인해 영구제명을 먹었던 강혁이 제명에서 풀려<ref>{{뉴스 인용
| 제목 = 프로야구 사장단,강혁 두산 입단 수용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4431366
| 출판사 = 연합뉴스
| 저자 = 권훈
| 쪽 =
| 날짜 = 1999-01-14
| 확인날짜 = 2020-02-10
}}</ref> 1루수 자리에서 밀려났고 지명타자 자리도 기존의 [[이도형 (야구인)|이도형]] [[최훈재]] (99년 해태에서 이적)가 있어 자리를 못 잡았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9년]] 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파동까지 겹쳐 동계훈련에 빠진데 이어 2군생활을 전전했고 결국 [[2000년]] [[6월]] 한화 유니폼을 입었으며 신인 시절 스승이었던 [[이광환]] 감독이 부임한<ref>{{뉴스 인용
| 제목 = [프로야구]한화 김종석 무서운 '늦바람'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0&aid=0000058450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김종석
| 쪽 =
| 날짜 = 2001-04-13
| 확인날짜 = 2020-02-10
}}</ref> [[2001년]] 처음이자 마지막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김종석은 [[2002년]]부터 갑작스런 부진에 빠졌고 급기야 [[2003년]] 부임한 [[유승안]] 감독에 의해 본격적으로 등용된<ref>{{뉴스 인용
| 제목 = 베테랑 중심 한화…'세대교체 시기 놓칠라'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9&aid=0000021307
| 출판사 = 데일리안
| 저자 = 이상학 객원기자
| 쪽 =
| 날짜 = 2007-02-16
| 확인날짜 = 2020-02-10
}}</ref> [[김태균 (1982년)|김태균]]에게 밀려 설 자리를 잃었으며 [[유승안]] 감독이 성적 부진 뿐 아니라 2년 계약 종료로 팀을 떠난 [[2004년]]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로 풀려<ref>{{뉴스 인용
| 제목 = [하프타임] 한화 투수 한용덕 은퇴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81&aid=0000016760
| 출판사 = 서울신문
| 저자 =
| 쪽 =
| 날짜 = 2004-10-13
| 확인날짜 = 2020-02-10
}}</ref> 은퇴했는데 공교롭게도 김종석은 [[2004년]] 시즌 후 한화 감독으로 취임한 [[김인식 (1947년)|김인식]] 감독이 OB 감독을 맡은 첫 해인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를 했으나 1996년 허리부상으로 인해 어렵게 잡은 주전 자리를 빼앗긴 데 이어 이에 앞서 OB 베어스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의 주동자로 낙인찍혔던 데다<ref>{{뉴스 인용
| 제목 = OB선수 집단이탈 왜 일어났나
| url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90700329119003&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9-07&officeId=00032&pageNo=19&printNo=15193&publishType=00010
| 출판사 = 경향신문
| 저자 = 정기수
| 쪽 =
| 날짜 = 1994-09-07
| 확인날짜 = 2020-02-10
}}</ref> 1998년 입단한 우즈 때문에<ref>{{뉴스 인용
| 제목 = 김종석 방망이 불붙었다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5&aid=0000363010
| 출판사 = 한국경제
| 저자 = 고경봉
| 쪽 =
| 날짜 = 2001-04-16
| 확인날짜 = 2020-02-10
}}</ref> 주전 입성에 실패했으며 급기야 이중계약으로 인해 영구제명을 먹었던 강혁이 제명에서 풀려<ref>{{뉴스 인용
| 제목 = 프로야구 사장단,강혁 두산 입단 수용
| url =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4431366
| 출판사 = 연합뉴스
| 저자 = 권훈
| 쪽 =
| 날짜 = 1999-01-14
| 확인날짜 = 2020-02-10
}}</ref> 1루수 자리에서 밀려났고 지명타자 자리도 기존의 이도형 최훈재(99년 해태에서 이적)가 있어 자리를 못 잡았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9년 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파동까지 겹쳐 동계훈련에 빠져 김인식 감독으로부터 미움을 사 2군생활을 전전하여 2000년 6월 두산(전신 OB 포함)을 떠난 바 있었다.
 
 
이후 트레이드된 [[황윤성]]이 10번을 달았지만, 그 또한 2005년 5월 [[현대 유니콘스]] 전에서 [[그라운드 홈런]]을 친 경기를 제외하면 큰 존재감은 없었고, [[최준석 (야구 선수)|최준석]]이 2006년 이적 이후 이듬해부터 10번을 달게 되는데, 최준석은 2007년 16홈런, 2009년부터 2011년까지 5번 타자로 맹활약하며 저주가 드디어 깨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질병인 무릎 부상이 발목을 잡기 시작, 2012년과 2013년을 연속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포스트 시즌]]에서의 맹활약 이후 [[자유계약선수제도|FA]] 때 친정 팀 [[롯데 자이언츠]]로 컴백, 부활에 성공했다. 다만 최준석은 롯데에서는 25번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