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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蔡壽, [[1449년]] [[8월 25일]]([[음력 8월 8일]])~ [[1515년]] [[12월 12일]]([[음력 11월 8일]]))는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인천 채씨|인천]].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ref>채씨 문중에서는 전통적으로 '난재'라고 명명하여 왔다. 懶의 원음은 "란"(《廣韻》落旱切《集韻》魯旱切)으로 이체자인 嬾(게으를 란)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현 중국어에서도 lǎn으로 발음한다.</ref>이다. 1469년(예종 1)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대사헌]], [[충청도]][[관찰사]],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에 녹훈되고 인천군(仁川君)에 봉군되었다. 저서로 《나재집》 2권이 있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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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중비어》
* 《[[설공찬전]]》
:설공찬전은 1511년(중종 11) 무렵 채수(蔡壽)가 지은 고전소설이다. 《중종실록》에서는 ‘설공찬전(薛公瓚傳)’,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에서는 ‘설공찬환혼전(薛公瓚還魂傳)’으로’<ref>어숙권, 《패관잡기》 권2</ref>으로 표기하였고, 국문본에서는 ‘설공찬이’로 표기하고 있다.
:한문 원본은 1511년 9월 그 내용이 불교의 윤회화복설을 담고 있어 백성을 미혹한다 하여 왕명으로 모조리 불태워진 이래 전하지 않으며, 그 국문필사본이 이문건(李文楗)의 《묵재일기》(默齋日記) 제3책의 이면에 <왕시전>·<왕시봉전>·<비군전>·<주생전> 국문본 등 다른 고전소설과 함께 은밀히 적혀 있다가 1997년 극적으로 발견되었다. 국문본도 후반부가 낙질된 채 13쪽까지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