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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기자를 은나라와 주나라의 태사로서, 기자조선은 두 나라의 스승의 나라로서 인식하였다. 단군과 더불어 기자에 매년 제를 지냈으며, 행적을 칭송하는 가묘를 세우기도 했다. 세조 때에 편찬된 《[[동국통감]]》, 영조 때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 등 거의 모든 사서에는 기자조선의 내용이 기록되었다. 여러 학자들은 기자조선에 대한 기록을 모아 책으로 저술하였고, 만주 중심의 사관을 가졌던 안정복은 기자조선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국호 사용을 제시하였다. 이후 출간된 《동국사략》, 《삼국사절요》에도 동일한 체계를 사용하였다. 16세기 이후로 등장한 사림파의 영향으로 17세기에는 중국의 하.은.주 3대의 역사를 강조하면서 이와 연관된 기자조선-마한-신라의 계승만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단군-부여-고구려-백제의 북방계와 기자-마한-신라의 남방계의 두 주류 모두를 인정하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조선 후기 [[안정복]]은 한국의 역사를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삼한으로 정리하여, 조선 초기의 체계를 따랐다. [[조선역사대한제국]] 고종황제의이후의 황명으로계몽기 편찬된사서들은 근대 소학교용 교재이자 조선통사의 목차에는 단군기단군-기자기기자-실라기마한-고려기삼국-조선기통일신라-고려의 계승을 기록되있다수록하였다.
실제 내용에는 목차에도 없는 한사군 2부등
의 내용이 추가되어 있어 왜정시기의 필사본
으로 보여지며 1953년까지 특정인에 의해 각색본이 출간되었다.
 
==== 기자의 행적에 대한 논란 ====
조선시대의 논란은 주로 사서 내용의 불일치에 대한 것이었다. 주의 무왕을 피해 조선에 자리잡은 기자는 주나라에 돌아가지 않았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장유, 홍직필 등)<ref name="단군실사">이상시, 《檀君實史에 관한 文獻考證》, 고려원, 1990 </ref>
현재 동아시아 역사는 서세동점시기 와 왜정 식민지시대에 식민지 지배권을 정당화 하기위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유, 홍직필 등)<ref name="단군실사">이상시, 《檀君實史에 관한 文獻考證》, 고려원, 1990 </ref>
 
=== 일제 강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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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조선에 대한 현재의 관점 ==
 
 
《어원학적 관점》
(Etymological perspective)
 
 
기자조선(箕子朝鮮)은 고조선시대 중기 이후를 말한다.
 
고조선은 옛고(古)자를 앞에 붙여 조선을 계승한 대조선(후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근대의 사학자들이 붙인 명칭이나 《조선》 또는 《단군조선》이 바른표기이며 후대에 뒤를 잇는 A.D 1392년 조선은 《대조선》 또는 《후조선》이 바른표기이다.
 
단군조선은 우리가 알고있는 홍산문명부터《紅山文明》 상나라《商朝》 기자조선《箕子朝鮮》까지를 단군조선《檀君(天干)朝鮮》이라하며 서세동점시기 와 왜정때 심각하게 한민족역사《韓民族歷史》를 훼손시켜 놓은것을 알수있다.
 
 
기자조선은 단군조《檀君朝》후기 기자《箕子》께서 다스린 시대를 말한다.
 
근대에 명칭으로는 단군조선과 같은 ‘조선’이지만, 구분을 위해 후조선(後朝鮮) 기씨조선(箕氏朝鮮) 한씨조선(韓氏朝鮮)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기자(箕子)는 역사 재단사(歷史裁斷士) 단재 신채호의 기자조선 부정으로 인하여 이후 민족사학자(民族史學者)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 영향으로 인하여 구려(구리,고려,부여)시대부터 대한제국시대 이후까지 신앙(信仰)으로 섬겨왔던 단군조(檀君朝) 기자(箕子)의 역사가 식민사학으로 왜곡되는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현재 단재께서 기자조선을 부정하였는지 또는 저술서가 왜정때 날조되었는지는 알수없다.)
 
천하고금대총편람도에는 현재 한반도를 기자도《箕子島 》로 표기하고 있다.
 
또한
 
상나라 천자의 칭호가 천간(天干)이며 천간은 1980년대 이후까지도 《쳔》 과 《텬》의 발음을 혼용해 사용하였다.
 
천간은 텬가니 탄구니 단구니 단군으로 동일한 호칭인것으로 어원학(etymology)적으로도 증명되는것으로 단군《檀君》의 최초 기록인 것이다.
 
고종황제의 황명으로 편찬된 소학교용 교재이자 한국 최초 통사인 조선역사(朝鮮歷史)서는 근대교육이 전개되는 시점에서 국사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교과서일 뿐 아니라, 최초의 한국사 통사(通史)라는 데 의미가 있다.
 
조선역사(朝鮮歷史) 목차에는 1권 《 단군기(檀君紀)》 《기자기(箕子紀)》 《신라기(新羅紀)》 2권 《고려기(高麗紀)》 3권 《 본조기(本朝紀)》로 표시되어 있어 기자조선의 실체를 고증하는 것이다.
 
그외에 전세계에서 출토되고 있는 상나라로 알고있는 단군조선 의 유물양식 과 중공대륙에서 출토되는 유물에 새겨진 문자등을 통해 고증할수 있음에도 식민지배 시대에 세뇌당한 식민사관이
역사학계를 잠식하고있는 실정이다.
 
단군조선의 주체가 바로 상나라 또는 은나라로 알고있는 고대국가로 옥기시대인 고한국(古韓國,하나라)을 멸하고 금속문명을 건설한 현대문명의 시원(始原)인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강단(식민)사학계 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사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자조선에 대한 고전적인 인식(기자동래설,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승계 등)을 부정하는 추세이나 이것은 식민사학의 폐단으로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것이다.
 
 
 
《단군조선의 성(姓) 과 씨(氏)》
 
성(姓,Castle,開設,womb,움부,uterus,子宮,십,힙,hip)의 어원(etymology)은 자식이 들어섬을 의미하며 태초의 어머니 성(姓)을 의미한다.
 
희(姬)성은 부계 씨(氏)가 아닌 모계 성(姓)을 의미하며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씨(氏)는 모두 태초 한인(桓人) 조상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식을 의미하는 자(子)씨인 것이다.
단군조선은 강력한 청동문명 창조의 주체로 부계사회입니다.
 
 
 
 
 
[[고려]]와 [[조선]]의 [[유학자]]와 [[성리학]]자들은 기자가 동래하여 조선을 세운 것을 근거로 중국을 부모국이라 부르기도 했다. 뒤에 기자조선에 대한 악평이 내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제시되어 있는 기자조선에 대한 여러 관점들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