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릉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249 바이트 제거됨 ,  1개월 전
양준니(토론)의 25711904판 편집을 되돌림
태그: m 모바일 웹
(양준니(토론)의 25711904판 편집을 되돌림)
태그: 편집 취소
 
[[1970년대]] 초 [[재일 한국인]] 사학자 [[이진희 (역사학자)|이진희]]는 비의 문자가 석회 도포로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형구]]는 비석 자체를 검토한 바, '倭'라는 글자는 '後'를 조작한 것으로, '來渡海破'라는 글자는 '不貢因破'를 조작한 것으로 주장하여, 비문을 "신묘년 이래 (백제와 신라가) 조공을 하지 않으므로, 백잔과 신라를 치고 신민으로 삼았다."라고 해석했다. [[김병기(교수)|김병기]]는 '渡海破(도해파)' 부분이 정상적 비문과 다르며, 획의 부분을 따졌을 때, 원래 글자는 '入貢于(입공우)'라고 주장했고,<ref> [http://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5/05/009000000200505252054031.html 일본은 광개토왕릉비를 이렇게 조작했다.], 2005.05.25, 한겨레 </ref> 중국의 경철화(耿鐵華)는 '來渡海破'의 海에서, 부수인 삼수변(氵)이 종선 밖의 부분에 위치 있음을 통해 海가 아니라 '每'라고 주장했다.<ref> 이도학, 《살아있는 백제사》,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전쟁기사 속의 백제', 379p 말미- 380p 초엽</ref>
김진명이라는 소설가는 석회로 조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는데, 호태왕비 중국 측 관계자 왕건군의 저자에서 '임나'인 줄 알았던 부분의 임 자리에 '동'이라는 글자를 찾게 되었다.
 
== 관련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