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눌프 (상파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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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년]] 혹은 [[708년]] 아버지 [[드로고 1세 캄파넨시스|드로고 1세]]가 갑자기 죽으면서 [[캄파니아]][[공작]]직을 물려받았다. 삼촌 [[그리모알두스 2세]]가 [[714년]]초 [[알프스 산맥]] 근처에서 살해되자 할머니 [[플렉트루디스]]는 자신의 손자들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아르눌프의 할아버지 [[피핀 2세 (프랑크)|피핀 데리스탈]]을 설득하였다.
 
[[714년]] [[12월]] 할아버지 [[피핀 2세 (프랑크)|피핀 데리스탈]] 또는 뚱보 피핀이 사망할 당시 이미 성년에 도달하였으나 그에게는 아무런 세력이 없었다. 할머니 [[플렉트루디스]]는 야심가인 이복 삼촌 [[카를 마르텔]]을 [[콜로네]]([[쾰른]])의 감옥에 유폐하지만 곧 탈출하게 된다. 할아버지 피핀이 사망할 당시 어떤 이유로 그 대신, 그보다 어린 사촌동생 [[테오도알드]]를 궁재로 내정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피핀 2세의 적손자 자격으로 [[부르군트 왕국]]의 일부 실권을 물려받았다. [[715년]] [[6월]]에 [[에흐터나흐]] 시에서 작성된 헌장에서, 아르눌프는 둑스(dux, 공작(duke))로 기록되었으며 아르눌프의 형제 후고, 고드프리드Gotfrid) 및 피핀(Pippin)은 [[메츠]]에 있는 [[성 아르눌프 교회]]의 땅과 재산을 분할 상속받았고, 그 곳에 묻힌 자신들의 아버지 [[드로고 1세 캄파넨시스|드로고 1세]]를 기념하였다.<ref>Fouracre, Paul J. (2013). The Age of Charles Martel. Routledge., pp.59.</ref> 그밖에도 그는 [[네우스트리아]]의 [[공작]]직을 겸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