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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지건'''(杜之建, [[975년(乙亥)]]∼[[1048(戊子]])는 고려 초기 [[전라북도]] [[김제시]] 지역(옛 만경현) 만경(萬頃)을 본관(本貫)으로하는 두릉두씨2세조이며, 품계는 두릉군(杜陵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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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건(杜之建)의 이름을 떨친 후손으로는 고려시대에 서경유수 조위총난을 평정하고 삼한후벽상공신에 제수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중서령(中書令)에 이른 두경승장군, 고려 명종조 최충헌의 독재체제 수립과정에서 숙청된 두응룡(杜應龍)장군, 고려말기의 문신으로 정2품 평장사를 지내고 장암가(長巖歌)로 유명한 두영철(杜英哲)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13세손으로 도총관을 지낸 두양필(杜良弼), 14세손으로 진무일등공신이었던 두기문(杜起文) 등이 있다.
 
 
== 두지건 묘역(萬頃 杜之建 墓域)대한민국 김제시의 향토문화유산(기념물) 제5호지정(2020년 2월 6일 지정)==
 
만경 두지건 묘역(萬頃 杜之建 墓域)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두릉(杜陵)에 있다. 2020년 2월 6일 김제시의 향토문화유산(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1] 지정 사유는 다음과같다. 만경 두지건 묘역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만경읍사무소(옛 만경관아터)와 만경 향교의 뒷편에 자리잡은 만경의 主山에 위치한 묘역으로, 두릉두씨의 시조 두경녕이 중국에서 벼슬을하다 고려국 궁지현(만경현)에 자리잡아 두릉군이라는 작위를 받았는데, 작위를 이어받은 두릉두씨의 2세조 두지건이 만경의 주산에 안장됨으로서, 만경일대가 두릉, 두산, 두릉산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워 졌다.210.116.246.93 (토론) 2020년 2월 16일 (일) 16:10 (KST) 또한 두지건 묘역과 마주보고 있는 만경능제 또한 원래의 명칭은 '두릉제'였으나 현재는 능제로 불리워지게 될 만큼 만경 지명의 역사와 함께하는 묘역임에 따라 향토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지정하였다.
 
==만경읍 두릉군 두지건 묘역 향토문화유산 지정 언론기사==
김제시가 1월 30일 만경읍 만경리에 소재한 ‘두릉군 두지건(杜之健) 묘역’을 향토문화유산 기념물5호로 지정했다.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두지건 묘역’는 만경두씨 2세조인 두지건(杜之健, 975년~1048년)의 묘이다. 두지건 묘역은 만경현의 옛지명인 두산(杜山), 두릉(杜陵)으로 불리어지게 된 연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두지건은 중국 북송(北宋)에서 중서사인(中書舍人)의 벼슬을 지냈으며, 부친인 병부상서 두경녕(杜慶寧)과 함께 진종(眞宗)의 왕위계승을 반대하다가 부친이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좌천되자, 부임도중 풍랑을 만나 부친과 함께 서기 1004년(목종7) 고려국 궁지현(현 김제시 만경읍)에 표착하여 만경두씨의 2세조가 된 인물이다.
두지건은 고려덕종(敬康王) 때 부친(父親)의 작위(爵位)을 이어받아 두릉군이 되었다. 고려 문종2년 1048년 만경현내 주산(主山)에 두지건을 장사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두릉(杜陵)이라고 부른데서, 후손들이 두릉(杜陵)을 만경두씨(萬頃杜氏)의 본관으로 삼았다.
만경현의 별호(別號)가 두릉현(杜陵縣), 두산현(杜山縣)으로 불리었다는 사실은 『동국여지승람』 및 『신증동국여지승람』, 정조연간에 발행된 『만경현읍지』, 『호남읍지』등의 사료에 기록되어져 있다.
* 연합뉴스, 네이버뉴스등 15언론사
 
== 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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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975년 태어남]]
[[분류:1048년 죽음]]
[[분류:두릉 두씨고려초기,두릉군]]
[[분류:두릉 두씨2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