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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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 유인형(장녀) <br> 유덕형(장남)
| 친척 = [[유치환]](아우) <br> 유지영(할아버지) <br> 유계원(증조할아버지)
| 활동 기간 = [[1931년]] ~ [[1974년]]
| 장르 = 희곡,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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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경상남도]] [[통영시|통영군 충무읍]] 출신으로, 한학을 공부한 뒤 10대 시절 [[일본]]에 유학하여 [[릿쿄 대학|릿쿄 대학교]] 영문학과를 학사 학위했다. [[1931년]] 귀국하여 곧바로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하고, 《문예월간》에 연재한 〈토막 (土幕)〉을 시작으로 농촌을 무대로 한 사실주의 작품을 발표하며 극작가로 활동했다.
 
〈토막〉을 비롯하여 〈버드나무 선 동리 풍경〉(1933), 〈빈민가〉(1935), 〈소〉(1935) 등 1930년대 초중반에 발표한 작품들은 식민지의 농촌 현실을 날카롭게 묘사하여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와 같은 경향파적 특성을 보이고 있는데, 이 때문에 카프 문인들로부터 [[동반자 작가]]로 평가 받기도 했다. 이 무렵 발표한 평론인 〈노동자 구락부극에 대한 고찰〉(1932) 등에도 계몽적 한계는 엿보이나 진보적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유치진의 초기 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친일 연극을 다수 공연했다. 예를 들어 [[1942년]] 발표한 〈북진대〉는 [[일진회]] 회장 [[이용구]]의 생애를 찬양한 작품이다. 관제 연극 공연을 위한 [[현대극장 (1941년)|현대극장]]을 주도했고, 현대극장 창립 작품으로 일본의 [[만주]] 침략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흑룡강〉의 희곡을 썼으며, [[함세덕]], [[조천석]] 등의 친일 작품을 연출하고 친일 수필도 발표한 기록이 있다. [[조선연극협회]], [[조선문인협회]]의 간부를 지냈고, [[1944년]]에는1944년에는 어용 문인 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의 소설·희곡부 회장이 되었다.
 
광복 후 [[우익]] 연극계에서 활동하며 반공 작품을 공연했고, [[대한민국]] 연극계의 기초를 닦았다. 해방기의 대표 희곡으로는 좌익 측에 대한 비판 의식이 포함된 〈조국〉(1946), 〈자명고〉(1946), 〈별〉(1948), 〈흔들리는 지축〉(1949)이 있다. [[한국 전쟁]] 이후로는 우파적 경향성은 희석되고 영화, 음악, 무용 등 인접 장르의 방법론을 도입하는 실험적 기법을 시도했다.
 
[[1958년]]에는1958년에는 [[서울예술대학]]의 전신이 되는 한국연극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60년대 이후로는 희곡 창작보다 드라마 센터 건립 등 연극 교육에 몰두했다. [[국립중앙극장|국립극장]] 극장장, [[한국연극협회]] 회장,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도 역임했다.
 
== 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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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은 [[일제 강점기]] 당시 현대극장을 중심으로 한 친일 행적이 뚜렷한 편이었기 때문에 [[반공주의]]가 다른 이념이나 논리에 앞서던 1950년대에 극예술연구회 시절부터의 동료인 [[김광섭]]과 희곡 〈왜 싸워〉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등 이미 연극계 친일 논란의 중심이었다.
 
[[1991년]] 대한민국 문화부가 유치진을 4월의 [[이 달의 문화 인물|문화 인물]]로 선정했지만 [[경상남도]] 충무시(현재의 경상남도 [[통영시]])의 문화 예술인들이 유치진의 친일 행적을 문제삼는 바람에 [[김정호]]로 교체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31300289109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3-13&officeId=00028&pageNo=9&printNo=872&publishType=00010 4월의 문화인물 유치진→김정호 문화부 번복 소동] (1991년 3월 13일 한겨레)</ref>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 부문에 포함되었다. 총 12편의 친일 저작물이 밝혀져<ref>{{저널 인용
|저자 = 김재용
|제목 = 친일문학 작품목록
|저널 = 실천문학
|연도날짜 = 2002-08
|작성월issue = 867
|issue = 67호123~148
|쪽 = 123~148쪽
|url = http://www.artnstudy.com/zineasf/Nowart/penitence/lecture/03.htm
|확인날짜 = 200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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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날짜 = 2007-09-28
|url-status = dead
}}</ref>,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시인 [[유치환]]의 친형이며, 자녀들은 모두 연극계에서 활동했다.<ref>{{뉴스 인용
줄 71 ⟶ 70:
*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
 
== 참고자료참고 문헌 ==
* {{서적 인용
|저자=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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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울대학교출판부
|출판위치=서울
|id={{ISBN| = 89-521-0461-7}}
|페이지=603~604쪽604}}
* {{서적 인용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줄 86 ⟶ 85:
|출판사= 돌베개
|출판위치=서울
|id={{ISBN| = 89-7199-013-9}}
|장=유치진 : 친일 ‘국민연극’ 주도한 근대연극사의 거두 (박영정)}}
 
== 각주 ==
{{각주}}
<references/>
 
{{극예술연구회 창립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