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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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은 [[카메룬]]을 대표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카메룬 축구 협회에서 관리·운영한다. '불굴의 사자들'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는 아프리카의 축구 강호 중 하나로 [[1965년]] [[4월]] [[차드 축구 국가대표팀|차드]]를 상대로 [[국제 A매치]] 첫 경기를 치뤘으며 현재 스타드 아마두 아히조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 개요국제 대회 경력 ==
=== 아프리카[[FIFA 축구 돌풍의 시작월드컵]] ===
[[1982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첫 발을 디딘 이후 총 7번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고 이 가운데 [[로제 밀라]]가 맹활약하던 [[1990년 FIFA 월드컵|1990년 대회]]에서 아프리카팀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8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고 특히 [[1986년 FIFA 월드컵|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를 개막전에서 1-0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전 세계 축구팬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러나 이후 6번의 대회에서는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조별리그 탈락의 쓴 맛을 봤고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2002뎐 FIFA 월드컵|2002년 대회]] [[2002년 FIFA 월드컵 E조|E조]] 조별리그 2차전을 제외한 나머지 14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
그리고 1990년에 와서 전세계에 [[카메룬]]의 존재를 확실히 알렸다. 개막전에서 1:0으로 아르헨티나를 무너뜨린 것을 시작으로, 동구권의 강호였던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루마니아]]마저 2:1로 이기면서 두 경기만에 16강을 확정지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소련]]에 0:4로 대패했지만 결과에 관계없이 조 1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16강에서 발데라마가 버티던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콜롬비아]]마저 2:1로 누르면서 대회 최고의 화제팀으로 떠올랐다. 8강에서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를 상대로 맹공을 퍼부으며 오히려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페널티킥만 두 번을 내주면서 2:3으로 아쉽게 역전패해 돌풍을 마감했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에는 무려 19번 출전하여 이 중 무려 5번의 대회([[198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1984년]], [[198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1988년]], [[200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2000년]], [[200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2002년]], [[2017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2017년]])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2번의 대회([[198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1986년]],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2008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14번의 대회에서 16강 혹은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둬들였다.
 
=== [[아프리카 네이션스 챔피언십]] ===
이 돌풍의 핵심에는 [[로저 밀러]]가 있었다. AS 모나코, 몽펠리에, 생피에르 등 프랑스 리그앙에서 활약하던 그는 당시 38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을 전두지휘하며 8강까지 올려놓는데 일조했다. 또한 개막전에서 결승골을 뽑은 오맘 비크도 카메룬의 영웅이 되었다. 1990년의 카메룬이 대활약을 하자 아프리카 축구협회에서는 FIFA에 월드컵 티켓을 늘려달라고 요청했고, FIFA은 그것을 수락해 다음 대회에선 3장으로 늘어났다. 여기서 라이벌인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가 16강에 오르는 활약을 하면서 1998년부터는 5장으로 늘어나 지금까지 고정되어있다. 말하자면 아프리카 돌풍의 신호탄을 카메룬이 쏜 셈인데, 아이러니하게 이 때 이후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를 단 한 번도 통과해 본 적이 없다.
자국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만 참가할 수 있는 아프리카 네이션스 챔피언십 본선에는 4번 출전하여 이 중 [[2011년 아프리카 네이션스 챔피언십|2011년]]과 [[201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 챔피언십|2016년 대회]]에서 8강에 진출했다.
 
=== 돌풍[[FIFA 이후컨페더레이션스컵]] ===
컨페드컵에는 3번 출전하여 이 중 200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2003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콜롬비아]]와의 4강전 경기 도중 팀의 미드필더인 [[마르크비비앙 푀]]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는 컨페드컵 개최 주기가 월드컵 개최전후 2년에서 월드컵 개최전 4년으로 조정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올림픽 축구|하계 올림픽]] ===
1994년에는 스웨덴과 비기고 브라질, 러시아에 지면서 1무 2패로 탈락했다. 소련의 해체로 러시아로 바뀌었을 뿐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것도, 대량 실점패한 것도 같았고 여기선 1:6으로 대패, 특히 한 선수에게 5골 실점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남겼다. 1998년에도 칠레, 오스트리아와 비기고 이탈리아에 졌지만 2무 1패로 탈락했다. 경기력은 괜찮다는 평을 받았지만 결국 승리는 없었다.
올림픽 축구 본선에는 3번 출전하여 이 중 U-23 대표팀으로 출전한 [[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2000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2008년 대회]]에서는 8강에 이름을 올렸다.
 
그나마 다시 부흥한 때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2000년과 2002년 네이션스컵을 2연패하면서 아프리카 최강자로 다시 군림하기 시작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전세계에 카메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알렸다. 2002년 월드컵에선 1승 1무 1패로 탈락했지만 8강 돌풍 이후 지금까지도 유일한 월드컵 승리를 남겼고, 2003년 컨페드컵에서는 [[마르크비비앙 푀]]의 안타까운 죽음을 묻고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다시 강호의 이미지를 남겼지만 2004, 2006 네이션스컵에서 연속 8강에 그치고 같은 해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실패하면서 다시 하락세를 맞기 시작했다.
 
한 때 나이지리아와 더불어 아프리카 최강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섯 손가락에 꼽기도 힘든 수준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최악의 모습으로 6전 전패를 했으며 특히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선수를 때려 퇴장당하는가 하면 경기 막판에 자기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는 등 내분으로 인해 0:4로 대패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도 연속으로 진출에 실패할 정도로 크게 슬럼프를 겪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현재 유명 선수로는 ''흑표범'' [[사뮈엘 에토]]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제 2의 황금기 시절 주역이며, 카메룬이 주춤할 때인 08-09 [[FC 바르셀로나]], 09-10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나치오날레]] '''2연속 트레블'''을 달성한 카메룬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2000년대 이후 아프리카 최고의 스타이다. 그가 클럽에서는 맹활약 할 때 카메룬 대표팀이 침체되어 월드컵이나 네이션스컵 모두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으며, 설상가상 에투가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현재는 팀이 내분으로 무너져있어 미래가 밝은 팀은 아니다.
 
== 국제대회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