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브레 동맹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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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군에 대한 공격''' (1510년 7월) ====
1510년 7월, 새로운 베네치아-교황령 동맹군은 공세적이였다. 프랑스가 점령한 [[제노바]] 공격에는 실패하였지만; [[루체 말베초]] 지휘하의 베네치아군은 마침내 8월초 비첸차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프란체스코 마리아 1세 델라 로베레|우르비노 공작]]이 이끄는 교황군과 합류하여 8월 17일 [[모데나]]를 점령했다. 율리오 2세는 [[알폰소 1세 데스테]]<ref name="salt"/>를 파문하여 페라라 공국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였다.<ref>교황의 파문에 대해 알폰소도 앙갚음을 했다. 율리오 2세의 통치에 반대하여 볼로냐 시민들이 1511년 5월에 봉기한후 산 페트로니아 성당 정문 위에 서있던 교황의 동상을 쓰러뜨려 산산조각으로 때려 부수었다. (이 동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였다.) 대포 제작의 일인자이기도 했던 알폰소 데스테는 깨진 동상 조각들을 녹여서 튼튼한 박격포를 만든후 La Giulia라는 여자 이름을 붙였다.</ref> 또한 연이어 곧 승리할것으로 보고 페라라 근처에 있는 [[볼로냐]]로 거처를 옮겼다.(볼로냐는 페라라가 점령했던곳이다.)<ref>Norwich, ''History of Venice'', 415.</ref>
 
==== '''프랑스의 반격''' (1510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