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2세 벤티볼리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8번째 줄:
1488년에 그의 딸 프란체스카가 남편이자 파엔차의 군주였던 [[갈레오토 만프레디]]를 독살시켰다. 파엔차의 시민들은 도시를 정복하기 위한 주술로 개입한거라 여겨, 반란을 일으켰다. 조반니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엔차에 도착했지만, 그는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로렌초 데 메디치]]의 중재를 통해 풀려날 수 있었다. 같은 해 그는 밀라노 군의 카피타노 제네랄레(총사령관)가 되었지만 이는 조반니에겐 명예로운 직위뿐이였기에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권을 남긴다. 1488년에 조반니는 말베치(Malvezzi) 가문이 일으킨 음모를 분쇄시켜냈으며, 그 가문 출신들 대부분의 목을 매달거나 추방시켰다. 1501년에 같은 운명이 [[루스폴리 가문|마레스코티 가문]]을 강타했다.
 
조반니는 팽창주의를 펼쳤던 [[체사레 보르자]]에게 저항을 했었지만, 1506년 10월 7일에 [[교황 율리오 2세]]가 권좌에서 물러날 것과 [[파문]]을 공포하였고 볼로냐도 파문에 놓였다. [[루이 12세]]가 보낸 부대와 함께 교황군이 볼로냐로 진격해오자 조반니 2세와 그의 가문원들은 도망쳤다. 1503년에 즉위한 교황 율리오 2세는 같은외국의 지배에서 해방된 강하고 독립된 교황직을 이탈리아에 정립하고자 노력했다. 우선 알렉산데르 6세 치세하에 교황령을 가문의 영지로 만들었던 체사레 보르자를 제거하였다. 체사레의 세력이 쇠약해지자 볼로냐는 자치권을 강화하여 독립하고자 했다. 법적으로는 교황령이였던 지역들을 직활령으로 만들고자 했던 교황 율리오 2세는 이를 허용치 않았다. 1506년에는 그가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볼로냐(Bologna)를 점령였고 11월 10일 당당하게 볼로냐에 입성하였다. 그런후 교황대사를 파견하여 통치하였다.
 
조반니는 [[팔라비치니 가문]]이 통치하던 [[부세토]]로 처음 자리를 옮겼었다. 그의 아들 안니발레 2세와 [[에르메스 벤티볼리오|에르메스]]가 1507년에 볼로냐 탈환 시도를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볼로냐인들은 나중에 도시에 남아있는 그의 재산들에 폭동을 일으켰고, 궁전을 파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