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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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운동 ===
[[1913년]] 친구 타스카의 영향으로 [[이탈리아 사회당 (1892년)|이탈리아 사회당]](PSI)에 입당한 그는 본격적인 [[사회주의]] 운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공업도시인 토리노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 활발하여, 가두시위([[1904년]]), [[금속노동]]자들의 [[파업]]투쟁([[1912년]],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75일간 진행됨), 금속노조(FIOM)의 지도로 진행된 파업투쟁([[1913년]], 93일간 진행됨)이 일어날 정도였다. 이를 본 그람시는 토리노 노동자들이 북부 [[자본가]]들을 위협할 정도로 강한 단결력과 남부 농민대중을 이끌 수 있는 지도능력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1915년]]부터 [[이탈리아 사회당 (1892년)|이탈리아 사회당]] 기관지 <전진 ''Avanti''> 토리노판 편집위원회 활동, 사회당 지역주간지 《민중의 외침》(''Grido del Popolo'')에 정기적으로 글을 썼는데, 그의 관심분야는 [[사회]]와 [[정치]],[[노동운동]], [[제 2 인터내셔널]]의 짐머발트 회합, 반전결의, 문화[[비평]]등 다양하였다. 1917년에는 《전진》에 〈자본에 대한 혁명〉(여기서 말하는 자본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말함.)을 기고하였다.
[[1917년]]을 전후로 이탈리아 노동운동이 대단히 전투적으로 전환되어가는데 서구사회에서 전개된 노동자 평의회 운동에 몰두, 점차 사회당 내 [[좌파]] 세력을 형성해 나간다. 1919년 토리노 대학교 동창인 [[안젤로 타스카]], [[움베르토 테라치니]], [[팔미로 톨리아티]]와 사회당 내 급진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할 잡지 <신질서 ''Ordine Nuovo''> 를 창간하는데 이 잡지는 후일 [[이탈리아 공산당]]의 [[기관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