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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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공로라고 한다면, 1920년대, 30년대에 정통적 마르스크주의들의 논리의 밑바탕에서 깔린 경제주의적 해석을 극복하려고 했던 최초의 마르스크주의 이론가이다. 경제주의적 해석의 특징은 환원주의와 반영주의이다.
 
환원주의는 상부구조의 영역(정치문화 등)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경제적 요인에 환원시켜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이에 저항한 인물들이 루카치(계급의식의 중요성)와 그람시(정치, 문화, 이데올로기를 독자적 자율성을 갖는 영역으로 인식)이다. 반영주의는 국가는 부르죠와 계급의 이익을 반영하는 도구적 기구라는 식으로 토대적인 것을 반영하는 기구로서 해석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이고 그 자체는 물질성을 갖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람시에게 이데올로기는 토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피동적/비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자율성을 갖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기본명제 ①∼④에 주요한 수정을 가한다. 상부구조의 자율성과, 이데올로기영역의 상대적 자율성, 물질성등이다물질성 등이다.
 
결정론적 해석을 또한 배격한다.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배제된 어떤 객관적 힘, 관계,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는 점을 배격한다. 그람시에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는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투쟁과 노력, 승리와 패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람시는 마르스크주의자이기에 자본주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부인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의 강고성과 노동자 계급의 패배를 바라보면서 상당한 기간의 노력을 통해서만 사회주의적 질서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여긴다. 단순한 기계론적 과학주의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