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니아 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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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70년 유대전쟁으로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성전을 파괴하자 유대종교의 유파 중에서 친로마 정책을 취한 바리새를 제외하고, 사두개파, 에세네파, 젤롯파 등은 사라졌다.
 
바리새파는 성전 없는 상태에서 전쟁 이후 회당과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교를 정의하고, 바리새파 전통의 유대교를 구축해야 했다. 동시에 급성장을 하는 기독교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기독교]]가 칠십인역 구약성경만이 아니라 새로운 기독교 경전을 형성하는 것에 자극을 받은 바리새파 [[유대인]]들이 경전의 마감을 서두른 것이다. 반면에 바리새파 안에서 묵시 경향을 띤 분파와 정통주의 [[바리새 파]] 분파 간에 논중에서 최종적인 전통적 바리새파 입장을 확정하고 했다는확정하고자했다는 의견도 있다.
 
[[성경]]의 원류에 해당하는 유대인의 성경 [[타나크]]는 대략 B.C. 1500~400년대 사이에 오랜 세월을 거쳐 [[바벨론]], [[블레셋]],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 낱권들로 기록된 경전들이 제시하는 사상들에 대한 대안적인 사상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제시하려고 저술한 문서들로서, 오랜 세월을 거쳐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는데, 본 얌니아 회의를 통해 현재의 분류과 확립되었다는 전승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