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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oosevelt andHenri Giraud 1943Jan19.gif|섬네일|200px|루스벨트 대통령과앙리 지로 장군([[1943년]] [[1월 19일]])]]
'''앙리 오노레 지로'''({{llang|fr|Henri Honoré Giraud}}, [[1879년]] [[1월 18일]] - [[1949년]] [[3월 13일]])는 [[프랑스]]의 [[장군]]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그는 [[샤를 드골]]을 싫어하였으며(드골은 자유 프랑스 군복으로 채택된 식민지 부대 군복을 입었으며 지로는 본국의 프랑스군 군복을 입었다고 함)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그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드골과의 관계는 지로보다 선임 장군이었던 [[조르쥬조르주 카트루]], [[알퐁스 조르쥬조르주]]에 의해 개선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청년 장교 신분으로 1차 세계대전에 나서서 여러 번 공을 세웠으며, 독일군에 의해 [[포로]]가 되었으나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한 뒤 [[서커스]] 단원으로 위장해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도세계대전에도 참전하였으며, [[1940년]]에 한 때 [[나치 독일]] 군대의 포로가 되었으나 [[1942년]] 다시 탈옥에 성공하였다. 이후 [[알제리]] 방면으로 피신한 뒤 [[프랑수아 다를랑]]이 사망한 이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권유로 [[연합군]]에 합류하였다. 지로와 드골하고는 별로 사이가 안 좋았고, 임시정부의 총리가 된 이후, 지로는 공동 총리가 드골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퇴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저항운동 조직의 통합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자 [[1943년]] 6월 알제리에서 드골과 만나 '[[프랑스 민족해방위원회]](CFLN)'를 결성하였다.
 
{{전거 통제}}
 
{{기본정렬:지로, 앙리}}
 
[[분류:1879년 태어남]]
[[분류:1949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