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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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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타는 즉각 대통령궁 경비를 그들에게 맡겼다. 반란군의 고위직은 거의 죽거나 힘을 잃었으므로 이제 반란군의 실질적 최고 지도자는 우에르타가 되었다.
18일, 우에르타는 멕시코 [[상원의원]]과 만나 그들의 의견을 타진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전의 기득권층이자 [[크리오요]]였으므로 당연히 혁명을 반대했고 마데로 역시 좋아하지 않았다. 이들은 우에르타의 [[쿠데타]]에 대찬성이었다. 그날 정오, 우에르타는 구스타보 마데로와 점심 식사를 하다가 이번엔 거꾸로 구스타보를 체포하였고 쿠데타를 선포하였다. 곧 우에르타가 이끄는 반란군은 각료 회의를 열고 있던 마데로와 그 측근들을 체포했다. 반란군은 처음에는
윌슨과 우에르타는 기쁨에 겨워 "대사관 협약(Pacto de la Embajada)"을 맺었다. 주요 내용은 물론 우에르타를 대통령으로 하는 디아스 체제로의 회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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