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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열흘'''([[에스파냐어]]: {{llang|es|La Decena Tragica}})은 1913년 2월 9일~2월19일, [[멕시코 혁명]]의 과정에서 일어난 [[프란시스코 I. 마데로]]군과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조카인 펠릭스 디아스의 반란군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이 과정에서 [[빅토리아노 우에르타]]는 마데로의 연방군 총사령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에 동참해 이후 권력을 잡게 되었다.
 
== 배경 ==
에르타는 즉각 대통령궁 경비를 그들에게 맡겼다. 반란군의 고위직은 거의 죽거나 힘을 잃었으므로 이제 반란군의 실질적 최고 지도자는 우에르타가 되었다.
 
18일, 우에르타는 멕시코 [[상원의원]]과 만나 그들의 의견을 타진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전의 기득권층이자 [[크리오요]]였으므로 당연히 혁명을 반대했고 마데로 역시 좋아하지 않았다. 이들은 우에르타의 [[쿠데타]]에 대찬성이었다. 그날 정오, 우에르타는 구스타보 마데로와 점심 식사를 하다가 이번엔 거꾸로 구스타보를 체포하였고 쿠데타를 선포하였다. 곧 우에르타가 이끄는 반란군은 각료 회의를 열고 있던 마데로와 그 측근들을 체포했다. 반란군은 처음에는 오악사카에와하카에 주둔하는 마누엘 리베라 장군의 반란이라며 모시고 오라는 명을 받았다는 거짓말을 했으나 마데로가 믿지 않자 우에르타의 반란군이라고 시인했다.
 
윌슨과 우에르타는 기쁨에 겨워 "대사관 협약(Pacto de la Embajada)"을 맺었다. 주요 내용은 물론 우에르타를 대통령으로 하는 디아스 체제로의 회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