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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
전 이조참판(吏曹參判) [[성희안]]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박원종]], 이조판서(吏曹判書) [[유순정]],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 [[신윤무]] 등과 함께 왕이 장단(長湍) 석벽(石壁)을 유람하는 날을날<ref>연산군일기, [http://sillok.history.go.kr/id/kja_11208019_002 연산군 63권, 12년 8월 19일(병인) 2번째기사 / 장단 거둥 때 개성부의 문묘에 작헌례를 올리고 만월대를 구경하겠다고 전교하다]</ref>을 기하여 거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왕의 행차가 취소되면서 거사에 차질이 생겼고, 이때 호남 지역에서의 연산군 폐위 거사 격문이 서울에 나돌게 되면서 결국 당초 계획을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1506년 9월 1일, 박원종·성희안·유순정을 비롯하여 전 수원부사(水原府使) [[장정 (조선)|장정]],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 [[박영문]],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 [[홍경주]] 등은 훈련원에서 무사를 규합한 뒤, [[폐비 신씨|왕비 신씨]]의 오라버니 [[신수근]]과 그의 아우들인 신수겸(愼守謙)과 신수영(愼守英) 그리고 [[임사홍]] 등 연산군의 측근을 제거한 뒤,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경복궁에 들어가 [[정현왕후|자순왕대비]]의 윤허를 받아 연산군을 폐위하여 강화도 교동(喬桐)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진성대군이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오르니 그가 조선왕조 제11대 왕인 중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