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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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우마위야 왕조]]·[[압바스 왕조]]에 세습되어 가는 과정에서 [[시아파]]가 칼리파의 권위를 부정하고 분파하여, [[수니파]]만이 칼리파를 따르게 되었다.
 
칼리파는 어디까지나 예언자의 대리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슬람의 교의를 좌우하는 종교적 권한이나 꾸란을 독단적으로 해석해 입법하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고, 대신에 이것들은 울라마들의 합의에 의해서 보충되어 단지 움마의 행정을 통괄하여 신도들에게 이슬람의 의무를 준수시키는 역할 밖에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또 10세기에 압바스 왕조의 칼리파가 대(大)[[아미르]]에 정권을 맡기게 되면서, 칼리파는 실권을 잃고 아미르나 [[술탄]]의 지배권을 승인하는 대신에 그들의 비호를 받았다. 그 후 안달루스 왕조도 칼리파를 칭하게 되었다. 압바스 왕조의 마지막 바그다드 칼리파인 [[알 무스타심]]은 [[1258년]]에 [[일 한국|일칸국]]의 건국자인 [[훌라구]]에 의해 살해되어 아부 바크르 이래 계속된 칼리파 제도는 여기서 한 번 끊어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에 [[맘루크 왕조|맘루크]]의 [[바이바르스]]는 살아남은 압바스 왕조의 일원 가운데 한 사람을 [[카이로]]로 초대하여 새로운 칼리파로 옹립해, 맘루크(노예 군인) 출신의 술탄에게 지배의 정당성을 주는 존재로서 존속하게 되었다. [[1517년]], 맘루크 왕조가 [[오스만 제국|오스만 왕조]]에 의해 멸망하게 되면서, 카이로의 칼리파는 오스만 왕조의 수도 [[이스탄불]]로 끌려가 버렸다.
 
당초 오스만 왕조는 칼리파의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실력으로서 이슬람 세계의 맹주로서 행동할 수 있었지만, 18세기 말에서부터 19세기에 걸쳐, [[러시아 제국]] 등 주변 국가들에 비해 군사적 열세가 벌어지면서, 오스만 제국 내외의 무슬림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칼리파의 권위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16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파로부터 칼리파권을 선양받아 술탄과 칼리파를 겸비하는 군주제가 생겨났다(술탄-칼리파제).
 
== 칼리파의 권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