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의 정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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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의 정변'''(康兆의 政變)은 [[강조]]가 [[1009년]] [[고려 목종|목종]]을 폐위시킨 정변으로, [[요나라]]의 제2차 [[고려]] 침입의 구실이 되었다.
 
== 배경 ==
[[강조]](康兆)는 [[고려 목종|목종]] 때 중추사 우상시로서 [[평안도|서북면]] 도순검사가 되었는데, 1009년(목종 12) [[김치양]](金致陽)이 목종의 어머니 [[천추 태후]]와 사통하여 낳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난을 일으킬 때, 목종의 명을 받고 궁궐 수비를 위해 [[개성시|개경]]으로 오게 되었다. 그 뒤 김치양 일파를 제거한 강조는 사정이 복잡해지자 목종을 폐위시키고 [[고려 현종|현종]]을 옹립한다.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외척 [[김치양]]이 천추태후(千秋太后)와 더불어 정권을 농단하고, 천추태후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음모하였다. 목종은 후사 없이 병을 얻어 중추원 부사(副使) [[채충순]](蔡忠順)에게 김치양의 음모를 말하고 [[고려 현종|대량군 순(詢)]]을 후계자로 삼아 사직을 타성(他姓)에 넘기지 않도록 부탁했다.
 
== 경과 ==
{{토막글|한국사}}
 
한편 눈앞의 급변에 대비하기 위해 중추사 우상시 겸 [[평안도|서북면]] 도순검사 [[강조]]에 돌아와 개경의 궁궐을 지키게 하였다. 이때 세간(世間)에서는 목종이 위독한 틈에 김치양 등이 나라를 빼앗으려 한다는 풍문이 돌았다.
 
이윽고 목종이 죽었다는 헛소문이 전해지자 강조는 별장(別將)을 시켜 대량군 순을 맞게 하고, 자기는 개경으로 달려가 목종에게 퇴위를 강권하여 순을 왕으로 세웠다. 그 뒤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고 태후와 그 무리는 귀양보내었다.
 
== 결과 ==
이 정변은 [[고려-요 전쟁|요나라 침입]]의 도화선이 되었다.
 
== 함께 보기 ==
* [[고려-요 전쟁]]
 
{{글로벌세계대백과}} <!-- 〈고려의 대외정책〉 -->
[[분류:고려]]